□ No. 134. 〈벽오동 심은 뜻은〉,〈평양기생〉(2023.10.23.)
오늘부터는 서울의「국제극장」편으로 ‘벽오동 심은 뜻은’ ‘평양기생’ ‘임금님의 첫사랑’ ‘청사초롱’ ‘두견새 우는 사연’ ‘화초기생’ ‘팔도기생’ ‘황진이의 첫사랑’ ‘상처’ ‘소라의 꿈’ ‘한번 준 마음인데’ ‘울지도 못합니다’ 등에 대한 글을 3차례에 걸쳐 올려드리겠습니다.
「국제극장」은 1957년 서울 신문로1가에 개관해 1985년 폐관한 극장입니다. 좌석수 1,613석→ 1,405석(1974년), 개관작은 1957년 9월 28일 ‘세레나-데’(외화), 폐관작은 1985년 4월 14일 ‘사막의 라이온’(외화)으로 서울 광화문 도심 재개발 정책사업으로 폐관되었습니다.
주요 영화 개봉작은 1957년 11월 15일 ‘순애보’ 1958년 10월 14일 자유결혼, 1959년 7월 9일 ‘동심초’ 12월 22일 ‘타향살이’ 1960년 2월 11일 ‘카츄샤’ 10월 5일 ‘박서방’ 1961년 1월 18일 ‘춘향전’ 2월 15일 ‘마부’ 4월 13일 ‘오발탄’ 8월 24일 ‘황성옛터’ 9월 23일 ‘장희빈’ 10월 20일 ‘5인의 해병’ 11월 3일 ‘이별의 부산정거장’ 1962년 1월 11일 ‘임자없는 나룻배’ 6월 16일 ‘피리불던 모녀고개’ 7월 28일 ‘여자의 일생’ 10월 14일 ‘굳세어라 금순아’ 10월 26일 ‘외나무다리’ 1963년 3월 7일 ‘가정교사’ 4월 14일 ‘귀국선’ 9월 4일 ‘대전발 0시 50분’ 1964년 1월 1일 ‘천안삼거리’ 2월 13일 ‘평양감사’ 4월 25일 ‘명동 아줌마’ 10월 29일 ‘벽오동 심은 뜻은’ 11월 25일 ‘부부전쟁’ 1965년 5월 5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9월 2일 ‘아빠 돌아와요’ 9월 10일 ‘정동 대감’ 10월 3일 ‘흑맥’ 10월 29일 ‘계약 결혼’ 11월 27일 ‘불나비’ 1966년 2월 3일 ‘이별의 강’ 3월 25일 ‘나운규의 일생 – 아리랑’ 6월 8일 ‘나그네 임금’ 7월 24일 ‘잊을 수 없는 연인’ 8월 4일 ‘황금의 눈’ 9월 10일 ‘생일없는 소년’ 10월 28일 ‘평양기생’ 1967년 1월 1일 ‘청춘극장’ 3월 1일 ‘임금님의 첫사랑’ 5월 17일 ‘강명화’ 7월 1일 ‘청사 초롱’ 7월 13일 ‘너와 나’ 7월 28일 ‘두견새 우는 사연’ 9월 16일 ‘보은의 기적’ 9월 30일 ‘칠부 열녀’ 10월 20일 ‘섬마을 선생’ 1968년 4월 11일 ‘대원군’ 5월 1일 ‘남자 식모’ 5월 30일 ‘그대 이름은’ 7월 4일 ‘낙조’ 8월 3일 ‘여자의 일생’ 8월 29일 ‘화초 기생’ 10월 3일 ‘창공에 산다’ 10월 19일 ‘직녀성’ 10월 30일 ‘팔도 기생’ 11월 15일 ‘소라의 꿈’ 1969년 1월 7일 ‘팔도 사나이’ 3월 7일 ‘흑점’ 3월 21일 ‘윤심덕’ 4월 12일 ‘황진이의 첫사랑’ 5월 3일 ‘눈물을 감추고’ 5월 15일 ‘요화 장녹수’ 6월 26일 ‘뜨거워서 좋아요’ 7월 12일 ‘서울야화’ 7월 19일 ‘한번 준 마음인데’ 11월 28일 ‘첫날밤 갑자기’ 12월 13일 ‘울지도 못합니다’ 12월 20일 ‘상처’ 1970년 1월 1일 ‘지하 여자대학’ 9월 6일 ‘그림자’ 1971년 1월 27일 ‘내일의 팔도강산’ 4월 1일 ‘화녀’ 1973년 8월 18일 ‘처녀 사공’ 1975년 3월 8일 ‘연화’ 1976년 11월 6일 ‘푸른 교실’ 1977년 7월 1일 ‘첫 눈이 내릴 때’ 1981년 6월 13일 ‘자유부인’ 등을 개봉하였습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4년 미도파레코드사)
1절. 님 계신 서울길이 왜 이다지 멀고 먼가 / 어린 것을 등에 업고 눈물로 헤매이네 /
정 없는 몸이라고 인정마저 없을 소냐 / 벽오동 심은 뜻은 벽오동 심은 뜻은 /
님은 진정 모르리라
2절. 님 찾아 사랑 찾아 천리길을 왜 왔던가 / 등에 업힌 어린 자식 눈물로 헤매이네 /
미천한 몸이라고 인정마저 가련한 데 / 벽오동 심은 뜻은 벽오동 심은 뜻은 /
님은 진정 모르리라/
여류작가 장덕조(1914년〜2003년)가 1963년 8월∽1964년 9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한 역사소설 ‘벽오동 심은 뜻은’을 이규웅 감독이 영화로 제작 1964년 10월 29일「국제극장」에서 개봉했고, 12월에 삼성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했습니다. 배우 최은희, 신영균, 도금봉, 허장강, 김운하, 이예춘, 한은진, 양훈, 박암, 주란지, 최항 등이 출연했습니다.
「조선 중엽, 지방 관속들의 민폐는 바야흐로 극에 달해 그들의 학정에 반발한 백성들은 전국에서 의적이라는 미명 아래 노략질을 일삼고 있었다. 이에 악질 양반인 유풍언의 손자 유언서는 할아버지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두원의 딸 옥이를 사랑한다. 그러나 언서의 미래를 염려한 어머니가 옥이에게 떠나 달라고 부탁하자 옥이는 살던 집을 떠나 혼자서 언서의 아이를 낳는다. 그후 언서는 당대 최고의 실력자인 홍판서의 딸과 혼인하고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한다. 세월은 흘러 옥이의 아들 무쇠는 의적으로 자란다. 들끓는 의적들을 소탕하라는 어명을 받은 언서는 관찰사로 부임하던 길에 산길에서 무쇠 일당과 마주친다. 부자지간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언서와 무쇠가 결투를 벌이자 옥이가 나타나 두 사람의 관계를 알려주지만 싸움에서 이긴 언서는 대역무도한 죄인이라며 무쇠를 끌고 간다. 그러나 언서는 상감에게 탄원을 올려 무쇠를 사형 대신 유배에 처하게하고, 재회한 언서와 옥이는 나란히 유배지로 떠나는 아들을 지켜본다.」
☞ 여류소설가 장덕조는 기자 출신 언론인으로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중퇴한 1932년『개벽』사에 입사해『신여성』편집기자로 일하며 단편「저회」(低徊)를 발표해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1935년 매일신보에 소설「은하수」를 연재했고, 대표작으로는「함성」「민비」「낙화암」「이조의 여인들」등 90여 편이 있습니다.
–〈평양기생〉– 남국인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6년 지구레코드사)
1절. 무정터라 한탄 말고 욕하지 마소 / 진정으로 님을 위한 거짓말인데 / 행여나 변할
까봐 마음 조이며 / 내 낭군 알상급제 빌고 또 비는 / 평양기생 일편단심 변함 없다오
2절. 괴로워도 고달파도 참아 주세요 / 이 모두가 님을 위한 거짓들인데 / 행여나 버릴
까봐 가슴 조이며 / 주야장 긴긴 밤을 홀로 새워도 / 평양기생 일편단심 변함 없다오/
‘평양기생’ 1966년 TBC 라디오연속극을 이규웅 감독이 영화로 제작 그해「국제극장」에서 개봉돼 흥행에도 성공했으나 지금은 아쉽게도 필름이 보존되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배우 김지미, 신영균, 전계현, 최남현, 박암, 서영춘, 주선태 등이 출연하였습니다.「평양기생인 초선(김지미)은 호색한인 감사의 시달림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이 정혼한 사이인 권룡(신영균)을 찾아간다. 그러나 무위도식하는 그를 보고 하는 수 없이 초선은 다시 관기가 되어 생활한다. 그러나 사실 의적이었던 권룡은 평양 감영을 습격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옥에 갇히게 된다. 때마침 출두한 암행어사 덕에 감사는 파직되고 권룡은 옥에서 풀려나 초선과 재회를 한다. 이후에 권룡은 조정의 무관으로 등용된다.」
당시 이른바 ‘루삥집’인 판자집에 살면서 저녁에 가족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조그마한 트렌지스트 라디오에서 나오는 ‘평양기생’을 청취하던 것을 추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평양에는 유명한 기생(妓生)들을 많이 배출됐습니다.임진왜란 때 평안도 병마 절도사 김응서 장군의 연인 계월향, 1545년 을사사화의 주역 임백령의 연인 옥매향, 일제강점기 소설가 가산 이효석 연인 왕수복(1917년∼2003년), 강명화(1901년∼1923년), 1921년 설립된 평양기생학교 ‘평양 기성권번학예부’ 출신인 오산월, 매향, 장연화, 현매홍, 이난향, 김영월, 김복희, 남월매(차릉파), 장연홍, 김옥엽, 선우일선, 박은실, 신옥매 등이 있습니다.
연광정(鍊光亭)은 조선시대에 평양감사들이 기생들과 연회를 벌이던 대동강 변 대동문 근처 절벽 위에 있는 누각(樓閣) 입니다. 그 당시 가장 선호하던 벼슬이 평안도관찰사였지만 “평양감사도 제가 싫으면 그만이다.”
–〈나그네 임금〉– 임희재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7년 지구레코드사)
1절. 도령님 오늘은 어디로 가오 / 동가식 서가숙 발길 가는 대로 /
떠도는 우리 님은 나그네 임금 / 도령님 오늘 밤은 어디로 가오
2절. 도령님 내일은 어디로 가오 / 방랑길 삼천리 바람 부는 대로 /
떠도는 우리 님은 나그네 임금 / 도령님 내일 밤은 어디로 가오/
임희재 극본 MBC 연속극이 영화로 제작된 1967년 6월 8일「국제극장」개봉작입니다. 최인현 감독, 신성일, 문희, 이순재, 전옥, 주증녀, 이예춘, 박병호, 전계현, 전양자 출연 「조선의 제23대 왕 순조대왕 재위 시절. 사색당쟁의 여파로 전계군이 모반을 기도한 역적 죄인으로 몰려 처형되자 그의 아들인 원범과 원경 두 형제는 평민으로 가장하고 숨어 살아야만 했다.
그들의 고생살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순조가 승하하고 왕손인 원범이 왕위(철종)를 계승하게 된다. 원범은 사랑하는 양순과 그동안 따뜻하게 보살펴 주던 마을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며 한양으로 환궁 길에 오른다.」
–〈임금님의 첫사랑〉– 임희재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선생님(1967년 지구레코드사)
1절. 북촌마을 산다는 우리 낭군은 / 어느 댁 도령인지 알 수 없지만 /
밤에만 살짜기 찾아 오셔서 / 날 울려 놓고 돌아가시는 무정한 우리 님은 /
알고 보니 임금님이래요 임금님이래요
2절. 하늘같이 높으신 우리 낭군은 / 어느 나라 임금인지 알 수 없지만 /
벽오동 사이로 달 걸어 놓고 / 님 기다리는 애끓는 마음 무정한 우리 님은 /
알고 보니 임금님이래요 임금님이래요/
지난해 4월 11일 연재한 NO 58.〈임금님의 첫사랑〉은 TBC-TV ‘이조여인 500년사’ 제6화 ‘임금님의 첫사랑’ 드라마 주제가였고, 오늘 실어드리는 1967년 영화 ‘임금님의 첫사랑’은 제작 이정선, 기획 강명, 원작·각본 임희재, 이규웅 감독, 배우 문희, 신성일, 황정순, 전계현, 이낙훈, 강민호, 추석양, 박병호, 김칠성, 한은진, 정애란 등이 출연해 그해 3월 1일「국제극장」에서 개봉돼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입니다. 타이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당신의 혼을 흔들어 전 청취자를 들끓게 한 열광의 DBS 연속드라마!”
「한가위날에 조선의 임금님(신성일)이 궁궐밖 백성들이 사는 곳으로 암행을 나섰다가 청순하고 발랄한 한 시골 여염집의 처녀(문희)를 알게 되어 그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 임금님은 그녀를 못 잊어 하여 그녀를 궁궐로 데려간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그 남자가 임금님이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궁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그가 임금님이란 걸 알고는 크게 실망한다.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했지 임금님을 사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부귀영화를 버리고 다시 소박한 평민으로 돌아간다.」
☞ ‘북촌’(北村)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법정동 : 삼청동·화동·소격동·안국동·송현동·사간동)과 가회동(법정동 : 가회동・원서동·계동·재동) 2개 행정동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이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있는 동네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예로부터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관직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매천야록≫권1 상에 의하면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북촌이 권세 있는 양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데 비해, 남산 기슭을 중심으로 한 남촌은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들과 하급관리・상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에 일제강점기에는 남촌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어, 조선인 중심의 거주지역으로서 북촌과 일본인 중심의 거주지역으로서 남촌으로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어부인 생일에는 북촌 한옥마을 구경을 하면서 맛집 탐방이나 했으면 정말로 좋겠네요.
다음에는「국도극장」2편 ‘청사초롱’ ‘화초기생’ ‘팔도기생’ ‘황진이의 첫사랑’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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