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47.〈검은 상처의 부루스〉〈돌지 않는 풍차〉(2024.01.22.)
오늘은 서울의「을지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검은 상처의 부루스’ ‘돌지 않는 풍차’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서울「을지극장」은 1959년 1월 1일 을지로2가에서 좌석수 850석으로 개관해 1973년 9월 30일 폐관한 영화관입니다. 극장명은 최초에는 을지극장→ 파라마운트극장(1965년)→ 을지극장으로 변경됐습니다. 1959년 개관작은 ‘잊을 수 없는 모정’(외화), 1962년 7월부터 방화 전문관으로 변경해 그해 8월 15일 ‘평양기생 계월향’ 10월 3일 ‘왕자 호동’ 1963년 2월 8일 ‘마패와 검’ 3월 15일 ‘장미꽃 인생’ 8월 7일 ‘눈물 젖은 두만강’ 10월 12일 ‘오발탄’ 1964년 2월 13일 ‘검은 상처의 부루스’ 5월 9일 ‘모녀기타’ 8월 8일 ‘연락선은 떠난다’ 8월 29일 ‘동백아가씨’ 1967년 1월 26일 ‘돌지않는 풍차’ 1968년 12월 18일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1969년 ‘돌아온 팔도 사나이’ 1970년 5월 7일 ‘팔도 가시나이’ 1972년 10월 19일 ‘여고시절’ 1973년 1월 21일 ‘장욱제, 태현실 쑈’(24일까지), 7월 20일 ‘노래실은 금수강산’ 9월 23일 외화인 ‘미망인’(9월 30일까지)를 끝으로 상영후 폐관하였습니다.
–〈검은 상처의 부루스〉– 박춘석 작사·편곡, 김치켓(1963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그대 나를 버리고 어느 임의 품에 갔나 / 가슴의 상처 잊을 길 없네 /
사라진 아름다운 사랑의 그림자 / 정열의 장미빛 사랑도 검은 상처의 아픔도 /
내 맘속 깊이 슬픔 남겨 놓은 / 그대여 이 밤도 나는 목메어 우네
2절.(뚜뚜 뚜뚜뚜) 사라진 아름다운 사랑의 그림자 / 정열의 장미빛 사랑도 검은 상처의
아픔도 / 내 맘속 깊이 슬픔 남겨 놓은 / 그대여 이 밤도 나는 목메어 우네 /
그대여 이 밤도 나는 목메어 우네
〈검은 상처의 부르스〉1963년 김치켓이 부른 노래로 6월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검은 상처의 부루스’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검은 상처의 부루스〉〈알디라〉〈정열의 마카레나〉〈문리버〉〈라파로마〉〈투나잇〉SIDE B면.〈눈물의 자장가〉〈그리움〉〈아무도 없드라〉〈우리강산〉〈월광의 룸바〉〈아름다운 하늘〉등 우리나라 최초로 민간 음반사인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제작한 12인치 LP음반으로 그 당시 젊은층에서 유행했던 팝송 번안곡 12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검은 상처의 부루스〉는 1935년 미국의 테너 색소폰 연주자 ‘실 오스틴(Sil Austin)’의 색소폰 연주곡〈Broken Promises〉에 작곡가 박춘석이 노랫말을 짓고 편곡을 해서 그 당시 미국에 진출한 ‘김시스터즈’와 함께 일찍이 라스베가스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NBC방송 ‘투나잇쇼’ 등에도 출연했던 여성듀오 ‘김치켓(김영기, 박양수)’이 불렀습니다.
1963년 12월 21일 발행된 DBS 동아방송 ‘베스트텐’에서 1위를 차지했던 노래입니다.
영화. ‘검은 상처의 부르스’는 1960년대 한국 최고의 메이저영화사로 군림한 ‘신필름’에서 제작한 영화로 대표인 영화감독 신상옥의 신필름 제작 영화답게 여주인공으로는 그의 부인 배우 최은희가 맡았습니다. 최은희는 황정순 보다 나이가 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일련의 영화들에서 젊은 여주인공을 맡았고, 심지어 1961년 ‘성춘향’에서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16살 춘향역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1963년 노필 감독이 제작한 ‘검은 상처의 부르스’에서도 최은희는 최무룡, 남궁원 등 젊은 남자주인공들을 상대로 “사랑하는 남자의 장래를 위하여 사랑을 포기하는 비련의 여인”으로 등장을 했습니다. 영화 음악은 작곡가 박춘석이 맡았는데, 김치캣이 부른〈검은 상처의 부르스〉를 주제가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또한 노필 감독은 이 영화 시나리오의 원래 제목을 무시하고, 영화 제목도 주제가 제목인 ‘검은 상처의 부르스’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1964년 2월 14일 서울의「을지극장」에서 설날특선영화로 개봉됐지만 흥행에는 실패하고 주제가만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답니다. 제작 신상옥, 각본 강근식, 노필 감독, 배우 최은희, 최무룡, 남궁원 등이 출연했습니다.
「어느 영화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박철(최무룡)과 혜영(최은희)은 서로 연모하는 사이지만 또다시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미 8군쇼에 나가는 혜영은 새로 개업한 나이트클럽 ‘아리랑’의 신출내기 마담이 되어 큰 수익을 올리고, 박철은 프랑스 음악 유학을 끝마치고 귀국을 한다.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재회한 두 사람은 그전보다 더욱 더 열렬하게 사랑을 나누면서 혜영의 아파트에서 동거를 한다. 한편 성공리에 귀국연주회를 마친 박철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와 일본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의 초청도 거부하면서 혜영과의 사랑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르는 생활을 한다. 심지어 음악 활동까지 포기하려 하자 주위로부터의 많은 비난을 받는다. 드디어 박철의 스승이 혜영을 찾아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그의 곁을 떠날 것을 권유하자 박철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혜영은 그를 위하여 자신의 사랑을 단념한다. 그후 박철은 다시 음악계에서 명성을 떨치지만 혜영의 가슴속에는 검은 상처만이 남아있다.」
–〈돌지 않는 풍차〉– 조흔파 작사, 박시춘 작곡, 문주란(1967년 지구레코드사)
1절. 사랑도 했다 미워도 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 소낙비 사랑에는 마음껏 웃고 /
미움이 서릴 때면 몸부림을 치면서 / 말 없이 살아온 그 오랜 세월을 /
아아 아아 아아아 아아 돌지 않는 풍차여
2절. 울기도 했다 웃기도 했다 그래도 한은 없었다 / 눈물이 흐를 때는 조용히 울고 /
웃음이 피어나면 너털웃음 속에서 / 낙 없이 지내온 기나긴 세월을 /
아아 아아 아아아 아아 돌지 않는 풍자여
〈돌지 않는 풍차〉1967년 문주란이 부른 노래로서 조흔파 원작의 동명 KBS 라디오 연속방송극 주제가 동명의 영화주제가로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박시춘 작곡 걸작집, 중앙라디오 연속방송극 주제가 돌지 않는 풍차’의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1면. 문주란〈돌지 않는 풍차〉백설희〈언제까지나〉〈그때는 옛날〉진송남〈찾아온 제일부두〉쟈니부라더스〈서라벌 달밤〉SIDE 2면. 박재란〈딸기빛 첫사랑〉〈한강 소야곡〉남상규〈밤비는 내 가슴에〉백설희〈간호장교 백설희〉진송남〈그리운 화신코너〉등 10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이 노래는 3천여 곡을 작곡한 박시춘(1913년〜1996년)이 마지막으로 작곡한 노래로 1966년 발표한 문주란 데뷔곡〈동숙의 노래〉(한산도/백영호)와 함께 가수 문주란(본명 문필연)의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또한 필자의 44년지기 의형님의 옆지기인 권혜숙 형수님의 제일 애창곡이기도 합니다. 문주란이 중저음으로 부르는〈돌지 않는 풍차〉를 듣고 있으면 노랫말 속에 스며있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이 잘 표현되었고, 특히 연인과 나누었던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의 추억을 회상하는 슬픔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소낙비처럼 맹렬하게 쏟아지던 사랑의 열풍과 맹렬하게 돌다 멈춘 풍차같이 사랑도 멈춰선 슬픔을 느낍니다. 경남 거제에 2009년 세워진 풍차(風車)를 보면서〈돌지 않는 풍차〉를 흥얼거려 보시죠.
영화 ‘돌지 않는 풍차’는 신상옥 영화감독이 제작자로 만든 작품으로 1967년 1월 26일 서울의「을지극장(파라마운트극장)」에서 개봉 2만여 명의 관객만을 동원해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영화지만 문주란의 노래는 빅히트 했습니다. 각본 박찬성, 이봉래 감독, 배우 신영균, 고은아, 전양자, 윤인자, 한미자, 한유정, 한소영, 이향, 조항, 김성아, 장희정 등이 출연했습니다. 타이틀 “여자와 버스는 기다리지 마라! 곧 다음 차가 온다!! 동양방송의 백만애청자의 심금을 울린 연속드라마” “댁의 남편을 믿습니까? 댁의 부인의 욕구불만은 무엇일까요? 결혼하면 당신은 후회할 것이다! 결혼 안해도 당신은 후회할 것이다!”「중년기에 들어선 변호사 우영호(신영균)는 젊은 경숙이(고은아)를 후처로 맞아들이면서 새살림을 차린다. 그러자 철없는 전처(윤인자)의 딸 미애(전양자)가 두집 사이를 오락가락 하면서 이간질을 붙인다. 처음에는 좁쌀만하게 느껴지던 오해는 급기야 태산과 같이 부풀려지면서 커져만 간다. 그리하여 우영호에게 실망감을 느끼던 그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나중에는 전처(윤인자)도 후처도 모두 우영호의 곁을 떠나간다. 이에 자신의 부질 없는 처사들을 통렬하게 후회한 우영호는 전처를 찾아가서 지난 날을 사과하고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
☞ 문주란은 1965년 부산MBC 싱어경연대회에서〈보고 싶은 얼굴〉로 1위를 차지했고,
1966년 ‘국제 가요대상 신인상’, 1982년 ‘동경 국제가요제 최고가창상’을 수상했으며, 1966년, 1967년, 1968년, 1972년 1973년, 1974년 MBC10대가수에 6회 선정됐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김소월 시, 김광수, 이미자 선생님(1968년 지구레코드사)
1절.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2절.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1922년 김소월이 발표한 시(詩)로 노래의 원곡은 1957년 소월의 증손녀인 성악가 김상은〈엄마야 누나야〉(작곡 안성현 1920년〜2006년 전남 나주)입니다. 필자는 2019년 2월 19일 저녁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된 이미자 선생님 데뷔 57주년 기념공연 ‘이미자 가족음악회 In서울 – 엄마야, 누나야’ 콘서트장(VIP석 1층 B열 3번)에서〈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를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방송작가 심영식의 MBC 라디오 연속방송극을 1968년 각본 김지헌, 최훈 감독, 배우 윤정희, 신성일, 김성옥, 강문, 최남현, 허장강, 주증녀, 한은진, 안인숙 등이 출연해 12월 18일 서울의「을지(파라마운트)극장」에서 개봉하였습니다. 주제가는 이미자 선생님과 배호, 블루벨즈가 불렀습니다. 타이틀 “그대를 갖고 싶어 영원토록 그대 품에 안기어 오늘 하루밤만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할 수 있다면..” 영화 줄거리는「작은 어촌마을에 사는 은영(윤정희)과 우경(신성일)은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연인이다. 그러나 마을 유지의 아들이었던 우경은 서울로 대학을 가고 또한 미국으로 떠나면서 헤어진다. 이후 은영은 자신을 짝사랑하던 뱃사공인 남자(김성옥)와 뜻하지 않은 혼인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극진히 섬긴다. 어느날 미국에서 혼인한 우경이 돌아온다. 그녀는 남편을 극진히 모시지만 남편의 계속된 폭력 등 비인간적인 행동으로 인해 불행한 나날을 보내지만 그녀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날 우경이 고향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우경을 질시하던 끝에 절벽에서 실족해 추락사한다. 그 후 우연히 재회하게 된 은영과 우경은 그전 보다 더 열열하게 사랑하면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하였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끝는다.」
☞ 1972년 경향신문 발표 연예인 인기순위 20위. 1위 성우 고은정, 2위 성우 구민, 3위 탤런트 안은숙, 4위 가수 김상희, 5위 배우 윤정희, 6위 탤런트 김창숙, 7위 가수 이미자 선생님, 8위 탤런트 이순재, 9위 배우 김희갑, 10위 배우 신성일, 11위 가수 패티김, 12위 아나운서 김영우, 13위 가수 남진, 14위 배우 최무룡, 15위 배우 김지미, 16위 성우 남성우, 17위 성우 이창환, 18위 성우 정은숙, 19위 가수 최희준, 20위 아나운서 이광재, TV 보다 라디오가 국민 생활에 밀접해서 성우와 아나운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다음엔「중앙극장」에서 개봉한 ‘산유화’ ‘노들강변’ ‘해방동이’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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