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51.〈육군 김일병〉,〈애정이 꽃피는 계절〉(2024.02.19.)
오늘은 서울의 개봉 영화관 마지막 순서로「허리우드극장」의 ‘육군 김일병’과 정훈희 출연 영화 ‘애정이 꽃피는 계절’ 그리고 ‘전우가 남긴 한마디’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허리우드극장은 ‘신필름’ 대표인 신상옥 감독이 1969년 8월 21일 서울 종로 낙원동 낙원빌딩 4층에 좌석수 1,476석으로 개관해서 2005년 3월 20일 폐관되었지만, 2009년 「허리우드클래식」간판에 ‘실버영화관’ ‘모두의극장’ ‘낭만극장’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1969년 개관작 ‘푸로펫쇼날’(외화) 9월 26일 ‘육군 김일병’ 1970년 8월 29일 ‘스잔나’ 1971년 ‘천마산의 결투’ 1972년 1월 1일 ‘평양폭격대’ 7월 7일 ‘리칭의 여선생’ 1973년 2월 3일 ‘태양은 가득히’ 12월 5일 ‘물망초’ 1974년 9월 13일 ‘애정이 꽃피는 계절’ 1975년 8월 23일 ‘여고졸업반’ 1976년 2월 14일 ‘진짜 진짜 잊지마’ 11월 6일 ‘푸른교실’ 1977년 ‘성난 능금’ 1978년 3월 25일 ‘추하 내 사랑’ 1979년 4월 20일 ‘전우가 남긴 한마디’ 11월 8일 ‘제3한강교’ 1980년 6월 14일 ‘월녀의 한’ 1981년 6월 6일 ‘엄마없는 하늘 아래’ 1982년 12월 19일 ‘자유부인’ 1983년 1월 28일 ‘만다라’ 1984년 10월 26일 ‘남과 북’ 1985년 12월 15일 ‘불의 딸’ 1987년 5월 9일 ‘성춘향’ 등을 상영했습니다.
–〈육군 김일병〉– 정민섭 작사·작곡, 봉봉사중창단(1966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신병 훈련 육 개월에 작대기 두 개 /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신나는 김일병 / 헤이
부라보 김일병 / 기상나팔에는 투덜대지만 헤이 부라보 김일병 / 식사 시간에는 용감한
병사 / 신나는 휴가 때면은 서울의 거리는 내 차지 / 나는야 졸병이래도 그녀는 멋쟁이
/ 백발백중 사수에다 인기도 좋아 / 헤이 부라보 핸섬보이 육군 김일병님 용감한 병사
2절. 신병훈련 육개월에 작대기 두 개 / 그대로 그게 어디냐고 신나는 김일병 / 헤이 부라보 김일병 / 동네아가씨들 맘 설레 놓고 헤이 부라보 / 김일병 시침 떼고 가는
멋쟁이 병사 / 아가씨 울지 말아요 이다음 외출 때 만나요 / 살며시 윙크해 주는 그 매력 넘버원 / 백발백중 사수에다 인기도 좋아 헤이 부라보 핸섬보이 / 육군 김일병님 용감한 병사 / 헤이 부라보 핸섬보이 육군 김일병님 용감한 병사 / 육군 김일병
〈육군 김일병〉1966년 봉봉사중창단이 부른 노래로 11월 10일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봉봉 대 이씨스터즈 국내 최고 인기 남녀 보칼팀의 경연, 육군 김일병 / 울릉도 트위스트’ 앨범에 실려있는 타이틀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1면.(봉봉 노래)〈육군 김일병〉〈등대지기〉〈들에 핀 꽃들은 어디로 가나〉〈나일강을 따라〉〈편지위의 입술자국〉〈플랫폼〉Side 2면. (이씨스터즈 노래)〈울릉도 트위스트〉〈뻐꾸기〉〈제니의 추억〉〈화진포에서 맺은 사랑〉〈목석같은 사나이〉〈남성금지구역〉이 수록됐습니다.
영화는 각본 곽일로, 신상옥 감독, 배우 신영균, 최은희, 남정임, 백일섭, 김상국, 황해, 이해룡, 김웅, 장훈 등이 출연해 1969년 9월 26일 추석특선 영화로 서울의「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했으며, 재개봉관에서도 아주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제16회 아시아영화제 편집상과 가수 김상국이 제5회 백마상 특별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타이틀 “빨간 마후라를 능가하는…. 신상옥(申相玉 )감독(監督)의 신경지(新境地)!”
“3살부터 90살까지 다 같이 즐길 신상옥 예술(藝術)의 총화(總和)!! 추석 최강의 홈런!”
영화의 줄거리는「논산 훈련소의 훈련병 중에는 농촌에서 온 김성칠(신영균)과 대학을 다니다 온 김남천(백일섭) 그리고 가수 지망생인 김두섭(김상국)이 있다. 이들은 힘든 훈련 중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즐겁게 생활을 하여 훈련병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같은 부대로 배치된다. 그리고 이들은 영내와 영외에서 여러가지 명랑한 사건들을 일으킨다.」
–〈사랑은 생명의 꽃〉– 조운파 작사, 박춘석 작곡, 김보연(1983년 태양음향 1984년 패티김)
1절. 바람은 고요히 잠들고 강물은 잔잔히 흘러가는데 / 그대의 가슴에 기대어 가만히
듣는 숨결 사랑의 기쁨이 넘치네 / 나는 새가 되고 싶어요 나는 별이 되고 싶어요 /
나는 아름다운 꽃이 되고 싶어요 / 내가 사모하는 님이여 나를 사랑하는 님이여
영원히 나를 사랑해주오 / 사랑은 생명의 꽃이요 미움은 절망의 불꽃이라오 /
그대의 사랑은 언제나 나에게 희망을 주지만 미움의 고통뿐이라오 /
나는 가진 것이 없어요 나는 드릴 것도 없어요 오직 그대 사랑하는 마음하나 뿐 /
내가 사모하는 님이여 나를 사랑하는 님이여 나 항상 그대 위해 살리라
2절. 사랑은 생명의 꽃이요 미움은 절망의 불꽃이라오 / 그대의 사랑은 언제나 나에게
희망을 주지만 미움의 고통뿐이라오 / 나는 가진 것이 없어요 나는 드릴 것도 없어요
/ 오직 그대 사랑하는 마음 하나 뿐 / 내가 사모하는 님이여 나를 사랑하는 님이여 /
나 항상 그대 위해 살리라 / 나 항상 그대 위해 살리라
〈사랑은 생명의 꽃〉1983년 김보연이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노래로서 태양음향에서 발매한 ‘김보연 SEOUL SONG FESTIVAL ’83 금상 수상’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1면.〈사랑은 생명의 꽃〉〈사랑은 생명의 꽃〉(경음악)〈생각〉〈사랑했단 말대신〉〈빨간 털장갑〉〈사춘기〉SIDE 2면.〈잃어버린 창가〉〈바람〉〈이수〉〈못잊어〉〈내 아들아〉〈영원한 내조국〉등이 수록됐습니다. 1974년 영화 ‘애정이 꽃피는 계절’로 데뷔한 김보연이 안양예술고등학교를 다니던 그해 학교장의 추천으로 영화에서 주인공 남진의 여동생 역으로 배우로 데뷔했던 것입니다. 그후 1975년 MBC-TV 청소년드라마 ‘제3교실’에 출연했고, 1976년 MBC-TV 공채 탤런트에 합격해 영화 ‘진짜 진짜 좋아해’ 등에 출연하면서 하이틴 스타로 등장합니다. 1978년 MBC-TV 연속극 ‘당신’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본 레코드회사에서 가수 데뷔를 권유해 ‘김보연 골드 히트집’을 발매하면서 가수로 데뷔했는데, 타이틀곡인〈사춘기〉(김중순/박춘석)가 가요차트에서 5주연속 1위를 차지해 만능탈렌트로 발돋움했습니다.
영화 ‘애정이 꽃피는 계절’은 제작 대영흥행주식회사, 각본 박옥상, 윤정수 감독, 배우 문주란, 남진, 김보연, 김희갑, 백일섭, 박남옥, 박상규, 김복순, 전혜경, 오항봉, 장명숙, 전숙, 이현목, 임운학, 이예성, 추봉, 김신명, 손전, 권일정 등이 출연해서 1974년 9월 13일 서울의「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됐습니다. 줄거리는「김사장의 집에서 식모 생활을 하는 이쁜이(문주란)는 가난한 고향을 일으켜 보겠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새벽에는 우유 배달을 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에 다닌다. 그리고 이쁜이의 이웃 마을에 살던 영진(남진)은 김사장집 가정교사를 하면서 농과 대학을 졸업한 후 농촌을 위하여 살겠다며 김사장이 만들어 준 양송이 농장의 책임관리자로 일을 한다. 세월이 흘러 목표로 했던 돈을 다 모은 이쁜이가 고향마을로 돌아와 영진과 힘을 합쳐서 협동체제의 농장을 세우고 두 사람은 모든 이의 축복 속에 혼인을 한다.」영화의 원제는 ‘아랫마을 이쁜이’였으나 제목을 바꾸어서 문주란이 출연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 당시 영화들은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와 문화공보부의 검열을 꼭 받아야 했는데. 영화 ‘애정이 꽃피는 시절’이 검열합격증을 받기까지의 일정별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974년 6월 12일 영화 제작 신고서 : 양도증, 경유서 첨부, 1974년 6월 18일 영화 제명
변경 신청 : 사유서 첨부, 1974년 6월 18일 영화 제명 변경 승인(문화공보부), 1974년
6월 19일 영화 “애정이 꽃피는 계절” 제작 신고 : 보고서, 시나리오 검토 의견서 첨부,
1974년 8월 16일 조연 변경 신청, 1974년 8월 23일 조연 변경 승인(문화공보부), 1974년 8월 30일 영화 검열 신청서 : 연소자 관람 검열 신청서, 확인서, 면허세 납세
증명서, 영화배급 신청서 접수필증 첨부, 1974년 9월 3일 영화 “애정이 꽃피는 계절”
검열 합격(문화공보부) : 영화 검열 합격증, 영화 검열 의견서 2부 첨부, 1974년 9월
4일 영화 예고편 검열신청서 제출 : 면허세 납세증명서, 예고편 검열대본 첨부, 1974년
9월 11일 영화 예고편 “애정이 꽃피는 계절” 합격(문화공보부) : 영화예고편 검열합격증
–〈전우가 남긴 한마디〉– 전오승 작사·작곡, 허성희(1977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야 정말 그립구나 그리워 /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
정말 용감 했던 전우다 /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정의의 사나이가 / 마지막 남긴
그 한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 이 몸은 죽어서도 조국을 정말 지키겠노라고
2절. 전우가 못다했던 그 소망 내가 이루고야 말겠소 / 전우가 뿌려놓은 밑거름
지금 싹이 트고 있다네 / 우리도 같이 전우를 따라 그 뜻을 이룩하리 / 마지막 남긴
그 한마디가 아직도 쟁쟁한데 / 이 몸은 흙이 되도 조국을 정말 사랑하겠노라고
〈전우가 남긴 한마디〉1977년 허성희가 부른 노래로 1978년 5월 1일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허성희 골든 앨범, 전우가 남긴 한마디’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 곡입니다. 음반에는 Side A면.〈전우가 남긴 한마디〉〈백마〉〈옆집 총각〉〈시계와 데이트〉〈과거는 흘러갔다〉〈사랑의 송가〉Side B면〈진정〉〈마음에 새겨진 결심〉〈앵무새〉〈언제까지나〉〈미사의 종〉〈이별의 인천항〉등 12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전우가 남긴 한마디〉는 한국전쟁 발발 27년 후에 울려퍼진 살아남은 전우(戰友)의 “비가(悲歌)”입니다. 평안북도 진남포에서 월남해 서울서 살던 작곡가 전오승의 친동생 전기승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했다 전사합니다. 전오승이 1978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전 동생이 잠든 동작동 국군묘지를 찾아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고자 동생과 참전용사들을 위한 진혼곡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25세 무명가수인 허성희는 1972년 가요계에 데뷔해 1977년 첫 독집 앨범을 발표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7년 전오승에게 픽업되면서〈전우가 남긴 한마디〉를 타이틀로 한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해 대중들에게 알려져 그해 TBC 신인상 후보에 오르면서 말그대로 스타급 가수로 떠올랐지만, 1979년 세 번째 앨범이 인기를 끌지 못해 가요계를 잠시 떠났습니다. 매년 6월 ‘국가 보훈의 달’이 되면은 각 방송에서 많이 불려지고 있는데, 특히 6월 6일 현충일과 6월 25일에 더욱 더 듣고 싶어지는 노래가 허성희〈전우가 남긴 한마디〉인 것입니다.
영화는 이원세 감독, 배우 전영선, 전영재, 김만, 장혁, 진봉진과 김진규가 특별출연해 1979년 4월 20일 서울의「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됐고, ‘제1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줄거리는「598고지는 작전을 펼치는데 전술상의 요지로 적은 그곳을 천연 요새화를 했다. 이 곳을 폭파하지 않고서는 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기 때문에 6명의 정예특공대가 적진 깊숙히 침투한다. 그들은 굴로 침입해 악전고투속에 화약고의 60도 경사진 지하터널로 들어가 시한폭탄을 장치하고 탈출한다. 도중에 장상사는 탈출을 하지 못하고, 화약고와 함께 폭발하고 전사한다. 남은 대원은 트럭을 타고 탈출을 감행하나 고목에 부딪혀 희생되고 의무병 차일병만 본대를 향한다.」
한국전쟁 때 김일성이 “한국군 한 트럭을 가져다 줘도 오성산과 못 바꾼다.”할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강원도 금화군 오성산(해발 1,062m)에 위치한 598고지의 실전 상황을 옮긴 영화 ‘전우가 남긴 한마디’는 황길용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그 전에 만들어진 반공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극한 상황에 몰린 군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내세운 걸작 영화이고, 실전을 묘사한 전쟁 영화로 사실주의적 묘사가 압도적이며 병사들의 내면 세계와 심리를 섬세하게 표출했습니다. 또한 박진감 있는 전투 장면 등의 요소로 한국전쟁 영화 중에 백미(白眉)라는 평론을 받은 수작입니다.
다음에는 이미자 선생님의 나머지 영화주제가에 대한 글을 9편에 걸쳐서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