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62.〈애증산맥〉,〈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2024.05.06)
오늘은 우리나라 영화· 라디오· TV 연속극 주제가 제2편으로서 라디오 연속방송극인 ‘애증산맥’과 ‘은하수 사랑’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주제가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1956년 HLKA(KBS) 라디오 연속방송극 ‘청실 홍실’부터 시작된 멜로드라마의 인기는 주제가의 성공과 더불어 영화로 제작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TV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라디오와 영화의 전성시절이었고, HLKA ‘애증산맥’도 그랬습니다.
–〈애증산맥〉– 임희재 작사, 김광수 작곡, 안정애(1960년 신세기레코드사)
1절. 그리다 무너진 슬픈 가슴에 / 산새도 울지 않고 나뭇잎 지네 /
아아아 아아아아 사랑도 미움도 / 이제는 가버린 빈 산골짝
2절. 부르다 쓰러진 그대의 이름 / 산골짝 하늘가에 메아리 전해 /
아아아 아아아아 사랑도 미움도 / 이제는 가버린 빈 산골짝
〈애증산맥〉1960년 안정애가 부른 HLKA(KBS) 라디오 연속방송극 주제가로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영화주제가 선곡 NO. 3 이수일과 심순애’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음반엔 SIDE A면. 남인수〈수일의 노래〉(대사 방수일), 안정애〈순애의 노래〉〈님은 가슴에〉고운봉·안정애〈파도 넘어 해당화〉SIDE B면. 최무룡〈귀향〉나애심〈그리운 님〉안정애〈애증산맥〉안다성〈밤에만 흐르는 강〉등 8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애증산맥’은 1960년 4월부터 9월 17일까지 총 29회 방송된 HLKA 라디오방송 주말극으로 임희재 원작, 홍두표 연출로 탄광촌을 배경으로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로 성우는 오승룡, 이순재, 김영옥, 김소원, 오정한, 옥경희, 이혜경, 최인봉 등이 출연했습니다. 이순재(1934년)는 성우, 배우, 탤런트, 성우 등을 했고, 탤런트 김영옥(1937년)도 아나운서, 성우, 연극·영화배우를 했으며, 특히 김영옥은 오빠인 김순환도 아나운서, 남편 김영길도 아나운서, 큰딸 김현주도 방송인, 전체가 방송인 가족입니다. 김소원(1935년 본명 김연임)도 1954년 KBS 1기성우로 합격해 1956년 ‘청실 홍실’ 주인공 성우를 했고, 1970년∽1990년대까지 탤런트로 활동했는데, 여동생은 탤런트 김민자, 제부는 최불암, 남편은 아나운서 출신 대한민국 조형미술 선구자 최만린입니다. 성우 동기는 오승룡, 고은정, 박용기, 심영식, 김수일, 윤미림, 신원균, 이창환 등입니다.
–〈은하수 사랑〉– 석운 작사, 하기송 작곡, 이길남(1966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멀고 아득한 내고향 하늘 그 하늘밑 그리운 그대 / 언제 그 언제나 만나볼거나 /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돌아갈 길 막막하여라 / 밤이면 은하수 다리를 건너 너를 찾아 헤메이는 사모친 순정 / 아 아아 꿈속에서 맺어 보는 은하수 사랑
2절. 고국을 떠나 낯선 이국땅 억울한 세월 이십년에 / 사나이 가슴엔 멍이 들었네 /
불러봐도 또 불러봐도 두고온 님 대답없어라 / 밤이면 은하수 다리를 건너 너를 찾아
헤메이는 사모친 순정 / 아 아아 꿈속에서 맺어 보는 은하수 사랑
〈은하수 사랑〉1964년 이길남이 부른 HLKA(현 KBS) 라디오 연속방송극 ‘은하수’의 주제가로 1966년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서울나그네 / 해녀의 노래’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방송은 1964년부터 1965년까지 방송됐는데, 연속극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들려주던 주제가 이길남〈은하수 사랑〉을 들으면서 청취자들은 두 사람이 꼭 만나게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가를 많이 원망했다고도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TV시청자, 라디오 청취자들이 드라마에 너무 취해 웃기도 하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죠.
「일제강점기 때 황학수는 혼례식을 앞두고는 약혼녀를 남겨둔 채 징용이 되어 일본의 어느 탄광으로 끌려간다. 남자의 마음에는 오로지 고향에 있는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곳에서도 한 일본 여자가 그를 좋아하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일본에 있는 탄광에서 20년만에 탈출해 고향을 찾아서 가게 된다. 그는 도망자 신세이므로 낮에는 움직이지 못하고 밤에만 산을 타고 이동을 하면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면서 중간에는 일본 순사에게 여러번 잡힐 뻔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힘들게 일했고, 또 탈출을 하여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침도 많이 하고 병을 얻게 된다. 드디어 밀항을 하여 현해탄을 건너서 결국 우리나라로 돌아와서는 고향을 찾아서 간다.
그러나 황학수는 고향 마을 입구에서 그리던 집의 불빛이 아련히 보이는데 이 남자는 기다리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약혼녀를 만나지 못하고 결국 서서히 숨을 거두고 만다.」연속극의 마지막 장면「징용으로 끌려간 뒤 20여년을 기약없이 그의 귀환만을 기다리며 남자의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던 약혼녀 “어머니! 밖에서 무슨 인기척이 나는 거 같아요!” “그래. 그런 거 같구나. 같이 나가보자.” 둘이서 호롱불을 밝히고 대문 밖을 나가보니…대문을 붙잡고 쓰러져 이미 숨이 넘어간 남자를 발견하고 두 사람은 절규한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신명순 작사, 김희갑 작곡, 박건(1971년 유니버샬레코드사)
1절.(루 루루 루루루) 루 루룰 루룰루 /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듯이 / 덧없이 사라진 다정한 그 목소리 /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 루 루룰 루룰루 루 루룰 루룰루 /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2절.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 루 루룰 루룰루 루 루룰 루룰루 /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1971년 DBS 동아방송의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인〈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은 그 당시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는 청취율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었기 때문에 수십 명의 남자 가수들을 물망에 올렸지만 결국 부드러운 음색을 갖춘 저음의 마술사 박건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방송국의 예상 역시 적중했는데, 박건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매력을 발휘해 드라마는 엄청난 청취율을 기록했고, 주제가도 동반 히트하면서 박건은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또한 유니버샬레코드사에서 처음 음반을 발매할 때에는 타이틀 곡이 아니었지만, 라디오 주제가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수정해 재발매를 하자 3만여 장이 팔리는 선풍적인 판매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가사에 나오는 “지금도 마로니에는…”으로 인해 박건은 ‘미스터 마로니에’ ‘마로니에 신사’로 불리면 수많은 여성팬들을 몰고 다니는 가수가 됐다고 합니다.
1940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난 가수 박건(본명 홍몽희)은 1965년 서울로 올라와 손목인 작곡가에게 노래를 배워 1966년 예명 홍우성으로 아세아레코드사를 통해 매표한 첫 앨범에〈그리워 우는 파랑새〉(남상포/손목인)를 실으면선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무명 가수로 활동하다가 1968년 예명 박건으로 발표한〈두 글자〉(허현 작사·작곡)가 히트를 하면서 가수로서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제목도 두 글자, 작사·작곡자 이름도 두 글자, 가수명도 두 글자, 취입한 레코드사도 오아시스·유니버샬레코드 두군데였습니다.
그후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사랑은 계절따라〉(가람/민인설)〈청포도 고향〉(정진성 작사·작곡) 등을 취입한 후 지구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옮겨 1969년 이미자 선생님께서 부르신 영화 ‘비나리는 고모령’ 주제가〈고모령을 넘을 때〉를 동시에 부르기도 했지만 2년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사랑은 계절따라〉〈청포도 고향〉이 역주행 히트했고, 지구레코드사 전속이 끝날무렵 이 곡을 부르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작곡가 김희갑의 회고 말씀 “그때까지 개인적으로는 박건이란 가수를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동아방송국 측(문예부장 가수 강수향)에서 이 드라마의 주제가만큼은 박건씨가 부르면 아주 제격일 거라며 적극 추천을 해왔어요. 그래서 반대없이 그대로 따랐지요.”
박건의 회고 “이 노래를 취입하러 녹음실에 갔는데 갑자기 김희갑 선생님이 노래 앞부분에 휘파람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악단원들에게 휘파람 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때 내가 나서서 직접 불어보면 어떻겠냐고 했죠. 그래서 불게 되었는데, 처음 마이크에 대고 부니 소리가 튀며 휘파람 소리가 끊어져요. 해서 마이크를 반대로 내려 놓고, 다른 곳에서 불었죠. 녹음이 끝난 후 선생님이 ‘휘파람을 그렇게 잘 부르는 지 몰랐다’며 만족해 하셨죠. 아마도 이 노래는 휘파람 때문에 더욱 히트된 것 같아요”
다음엔 주제가 제3편 ‘어머니 울지마세요’ ‘울면서 한세상’ ‘울며 헤어진 염천교’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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