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위기, 진보는 기회
21대 국회에서 22대 국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양대 진영은 한국 정치의 수치스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여소야대의 극한 대치 속에서 야당 단독 국회를 개원하여 국회의장을 뽑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여야 협치를 통한 민생을 챙겨도 부족할 판에 여야는 당리당략에 집착하여 정세를 틀어쥐기 위한 혈안과 아귀다툼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었고 민생은 방향타도 잃어버린 채 각자도생의 길로 빠져 들고 있다.
정치의 가장 기본적 의무가 정권쟁탈이 아니라 민생을 돌보아야 할 터인데, 요즘처럼 정치가 국민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준 적이 있었던가?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거대 야당대표의 배우자까지 특검의 구설수에 올라 있으니 삼김여사(김건희,김정숙,김혜경)리스크는 세계사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대통령들의 수치시대에서 이제는 배우자 수치시대가 시작될 모양이다. 어찌 동방예의지국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22대 총선 후보자의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공천참사와 막말난사는 얼마나 국민을 부끄럽게 했고 화나게 했던가? 결국 용산에서 발포된 강직성 발언에 22대 총선에서 여당은 처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을 몰랐던가? 지금도 왜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졌는지 그 발원지가 어디인지 짐작은 가나 물증을 감히 들이 댈 수 없는 여당이다.
30%대를 넘지 못하는 윤대통령의 지지율은 보수의 위기를 말해 주고 있다. 이 비상적 위기상황을 관리할 여당의 빼어난 리더십이 부재한 것 또한 더 큰 위기다. 총선 참패에 대한 내부설전만 난무할 뿐, 어디서도 위기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한동훈 팬덤 속으로 여당은 거침없이 매몰되어 그 이상의 것이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정치인의 팬덤을 연예인의 그것과 같은 양상으로 착각한 오류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결과가 말해 주듯이 175석 거대야당의 수레를 108석의 여당이 이끌어 가자면 완력만 가지고는 역부족이다. 솔로몬의 지혜와 역량이 필요하다. 국정운영에 대한 역량일 수도 있고 국가적 비전과 희망제시를 통한 통합의 리더십일 수도 있다. 지난해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인 견리망의(見利忘義)의 자세를 넘어 견리사의(見利思義 )의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이다.
175석을 차지한 더불어 민주당의 막강한 힘은 무소뿔처럼 혼자서 가도 거침이 없을 기세다. 21대에 이어 22대에서도 여의도 대권을 거머쥐었다. 차기 수권정당으로서의 기회도 잡았다. 그러나 기회는 언제든지 위기로 닥쳐올 수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민심은 태풍이 아닐까 싶다. 태풍은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질풍노도를 일으키면서 뒤집고 삼키고 쓸어버린다. 태풍의 가장 안전한 곳은 태풍의 가장 중심부, 즉 태풍의 눈이다. 태풍의 눈 한 가운데는 매우 고요하고 안전하듯이 정치는 민심 속으로 들어가야 길이 보이는 법이다.
175석의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도 언제나 민심이 태풍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지금의 기회가 언제든지 위기상황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겸손함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기울어진 국회가 배려와 양보의 덕치로 균형을 이루어 민생을 올바르게 챙기고 4년이 아닌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워 대한민국호를 신통일한국으로 안착시켜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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