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75. 도미〈청춘 부라보〉〈하이킹의 노래〉신세영〈로맨스 항로〉(2026.07.06.)
7월(七月, July)은 그레고리력에서 한 해의 일곱 번째 달입니다. 대중가요를 들으면서 하이킹 하기에 딱 좋은 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도미〈청춘 부라보〉〈비의 탱고〉〈하이킹의 노래〉신세영〈로맨스 항로〉〈바로 그날 밤〉5곡의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가수 도미의 본명은 오종수로 1934년 경상북도 상주 서성동 감나무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현인을 좋아해 그의 창법과 발성 등을 흉내내면서 노래를 불렀고, 마침내 1951년 대구 계성고등학교 3학년 때 대구극장에서 열린 오리엔트레코드사가 주최한 ‘제1회 신인가수 선발 경연대회’에서 현인의〈신라의 달밤〉을 불러〈부산 행진곡〉의방운아와 함께 입상해 1954년〈신라의 북소리〉(야인초/박시춘)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작곡가 박시춘은 그를 가수로 데뷔를 시키면서 예명을 ‘도미’(都美)로 지어주었습니다. 그밖에 대표곡은〈청포도 사랑〉〈사도세자〉등이며 대중가요 60여 곡을 남겼습니다. 해마다 7월이 되면 이육사(1904년∼1944년 본명 원록→ 원삼→ 활) 시인의 ‘청포도’(靑葡萄)와 도미의〈청춘 부라보〉가 우리들의 마음을 뒤숭생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1937년 동인지『자오선』청포도「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춘 부라보〉–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도미(1956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절. 장미꽃이 피는 들창문을 단 둘이서 바라보면은 /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즐거웁게 걸어 가면은 / 어디메서 들려오는 사랑의 노래 / 그 누구가 불러주나
행복의 노래 헤! / 바람결에 쏟아지는 연분홍 테프 꽃잎처럼 날러서 온다네 /
청춘도 한 때 사랑도 한 때 / 다같이 잔을 들고 부라보 / 부라보
2절. 장미꽃이 피는 들창문을 사이좋게 바라보면은 /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도련도련 걸어 가면은 / 호랑나비 쌍나비가 춤추며 날고 / 비단같은 실안개가
손짓을 하네 헤! / 옷도 푸른 꿈도 푸른 가슴을 안고 손에 손을 잡고서 가잔다 /
사랑도 한 때 이별도 한 때 / 다같이 잔을 들고 부라보 / 부라보
〈청춘 부라보〉도미가 1956년 부른 노래로서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곡입니다.
1960년 작곡가 박시춘이 설립한 ‘오향영화사’에서 제작한 코메디 뮤지컬 영화 ‘장미의 곡’에 삽입된 주제가로 김희갑과 구봉서 곽규석 등이 포플러나무가 길다랗게 늘어선 가로수길을 자전거로 달리고 있을 때 낭만적으로 흘러나오는 곡입니다. 영화는 권영순 감독. 음악감독 박시춘, 배우 노능걸, 문정숙, 김희갑, 허장강, 주선태, 구봉서, 곽규석, 아역 전영선 등이 출연해서 1960년 4월 29일 서울의「국도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차일주(노능걸)가 작곡에 전념하는 동안 병든 아내인 영란(문정숙)은 손써볼 겨를도 없이 세상을 등진다. 이에 충격을 받은 차일주는 작곡을 포기하고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낸다. 이 사실을 안 이웃의 아마츄어 6인조 악단이 그가 작곡을 계속하도록 위로와 격려하는 한편, 시골에서 상경한 가수 지망생 아가씨 은실(김혜정)을 그에게 추천한다. 용기를 얻은 그는 다시 작곡에 전념을 해〈장미의 곡〉이라는 대히트곡을 발표한다.」
–〈비의 탱고〉– 임동천 작사, 나화랑 작곡, 도미(1956년 킹스타레코드사)
1절.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 마즈막 작별을 고하는 울음과 같이 /
슬픔에 잠겨 있는 슬픔의 가슴 안고서 / 가만히 불러보는 사랑의 탱고
2절. 지나간 날에 비 오던 밤에 / 그대와 마주 서서 속삭인 창살가에는 /
달콤한 꿈 냄새가 애련히 스며드는데 / 빗소리 조용하게 사랑의 탱고
〈비의 탱고〉도미가 1956년 부른 노래로서 킹스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사도세자 / 비의 탱고’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이곡은 1953년 군예대에서 상영했던 악극 ‘비의 탱고’ 주제가로 가수 현인이 불러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발매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1956년 도미가 재취입해 크게 성공하여 가수 도미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재개그 소재이기도 해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몇도일까요?” “네, 5도입니다.”
「작곡가 나화랑은 한국전쟁 중 군예대 소속으로 종군 위문공연을 하던 시절, 어느날 장마철에 군부대 막사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문득 감흥을 얻어 만들게 된 곡이라고 합니다. 경쾌하고, 부드럽고, 발랄하면서도 아련한 탱고곡입니다.」
–〈하이킹의 노래〉– 고명기 작사, 박시춘 작곡, 도미·백설희(1957년 미도파레코드사)
1절. (도) 높은 산은 부른다 메아리가 들린다 / 흰구름이 넌지시 떠있다 산새들도
노래 부른다 / 휘파람 불며가자 저 산 너머로 / 정답게 걸어가는 하이킹 코스에는 /
산들바람이 산들산들 소곤소곤 / 그대여 내 사랑이여 젊은 날의 꿈이여
2절. (백) 도봉산은 부른다 북악산도 부른다 / 찾아가자 대장군 봉우리 산울림도
즐겁구나 / 부르자 하늘 높이 명랑한 노래 / 즐겁게 걸어가는 하이킹 코스에는 /
아지랑이 가물가물 가물가물 / 그대여 내 사랑이여 젊은 날의 로맨스
3절. (도·백) 잔디 풀밭 부른다 손짓하며 부른다 / 단둘이서 노래를 부르며 저어가자
저 산밑으로 / 새 희망 새 살림을 건설하면서 / 불피리 불며가는 하이킹 코스에는 /
오색 무지개 아롱아롱 아롱아롱 / 그대여 내 사랑이여 젊은 날의 로맨스
〈하이킹의 노래〉도미·백설희가 1957년 부른 노래로서 1958년 9월에 도미의〈신라의 북소리〉와 미도파레코드사에서 발매했습니다. 1968년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앨범에 실린 남진〈하이킹의 노래〉(한혜원/한동훈)과 2000년 ‘열려라 동요세상’에서 KBS 어린이합창단이 부른 동요인〈하이킹의 노래〉(박희진/이희목)는 다른 곡입니다. 이 노래는 1958년 3월 1일 서울〈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두남매’의 주제가로 가수 도미와 백설희가 듀엣으로 불렀고, 또다른 영화 삽입곡〈두남매〉는 도미가,〈오빠 그리워〉는 백설희가 홀로 불렀습니다.
영화. 제작 김만길, 기획 김철, 음악 박시춘, 홍일명 감독. 배우 황해, 박노식, 이예춘, 이경희 등 출연.「암흑가 보스(황해)는 누이동생(이경희)을 끔찍히 위하는데 누이동생의 남자(이예춘)에게는 그의 불성실한 가정생활을 꾸짖기도 하는 의리파지만 경찰(박노식)에게 쫓기다가 잡히어서 남매는 눈물의 이별을 하는 장면으로 영화의 막을 내린다.」
☞ ‘하이킹’(hiking) ‘심신 단련이나 구경을 목적으로한 도보나 자전거로 여행 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하이킹을 즐긴 것은 전쟁이 끝나고 생활이 안정을 찾아갈 무렵 젊은이들은 쌍쌍히 짝을 지어 영화를 보거나 교외(郊外)로 나가 하이킹을 즐겼습니다. 당시 이런 연인을 아베크족이라고 했고, 대중가요도 1958년 송민도〈행복의 일요일〉남백송+심연옥〈전화 통신〉1962년 박재란〈아베크 일키로〉이미자 선생님 1962년〈낭만파 아가씨〉1963년〈아벡크 가세요〉등에 하이킹 장소가 등장합니다. 당시 서울 교외의 대표적인 하이킹 장소는 서울의 정릉과 뚝섬유원지와 창경원, 덕수궁, 수유리, 남산, 북한산, 도봉산, 아차산 등과 서울 근교 송추, 일영계곡, 구리 동구릉과 왕숙천과 구리지역의 먹골배 배나무밭, 안양 포도밭, 딸기밭, 부천 소사와 이천의 복숭아밭 등이 각광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이킹→ 트래킹→ 등산 순으로 운동 강도(强度)는 높습니다.
–〈로맨스 항로〉– 손영감 작사, 이병주 작곡, 신세영(1948년 오리엔트레코드사)
1절. 그라스로 맺은 로맨스는 담배불 연기드냐 / 선창가 메리껜호를 바라다 보면서 /
잔 들고 내가 울면 그대도 따라 우나 / 오륙도 등대불이 눈물에 흐려지드라
2절. 도람프에 점을 칠적마다 뽑아본 큐피트에 / 그 사랑 짝을 이루면 그 옛날이야기 /
그 밤이 내 죄라면 그대도 같은 죄냐 / 마스트 찬바람만 목 맺혀 슬프드라
3절. 하와이로 뜨는 고동소리 흐르는 백마일에 / 달무리 부서지면은 궂은 비는 온다 /
떠나는 내 희망은 그대가 바친 희망 / 부산항 갈매기는 즐겁게 나르드라
〈로맨스 항로〉신세영이 1948년에 부른 데뷔곡으로 1947년 작곡가 이병주가 대구에 설립한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곡입니다. 처음 데뷔곡으로〈귀국선〉(손로원/이재호)를 녹음했지만 녹음 상태가 나빠 음반이 폐기되었는데, 후에 이인권에 의해 취입되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후〈로맨스 항로〉를 새벽 1시에 녹음을 시작했는데, 시설이 열악해 중간에 잡음이 들어가는 바람에 다시 녹음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답니다.
신세영(申世影)의 본명은 정정수. 1926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릴 때에 대구로 이사와 1947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주최한 ‘신인가수 선발 콩쿨대회’ 입상 후 동레코드사 소속가수로 출발해〈로맨스 항로〉로 데뷔를 했고, 1951년 발표한〈전선야곡〉으로 사랑받았습니다.〈로맨스 항로〉는 1958년 대도극장에서 열린 ‘오리엔트레코드사 신인콩쿠대회’에서 남일해가 불러 그랑프리상인 대상을 받았습니다.
오리엔트레코드사 1호 전속가수인 신세영이 밝힌 예명 이야기는 “처음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신고산’이란 이름이 어떻겠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나머지 심사위원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는 가운데 손로원 선생이 성씨만 살려 ‘신세영’이 어떻겠냐고 제의했지요. 즉 신카나리아의 ‘신’, 장세정의 ‘세’, 이난영의 ‘영’자를 합친 이름으로 이 이름을 쓰면 우리나라 최고가수가 될 거라고 치켜세웠어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시춘, 백년설, 손로원, 이병주, 이재호 등 일곱 분이 투표한 끝에 5:2로 ‘신세영’으로 결정됐습니다.”
–〈바로 그날 밤〉–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신세영(1954년 스타레코드사)
1절. 흰눈이 휘날리는 바로 그날 밤 / 그대와 나는 촛불을 밝히면서 /
전선에 가는 짐을 싸고 있을 적에 / 멀리서 들리는 성당의 종소리 /
밤 하늘 수 없이 울렸지 / 아 그때가 잊지 못할 시절이었네
2절. 반달이 서산 위에 걸려있던 밤 / 그대와 나는 화롯불 둘러앉아 /
청춘일기를 적어 보고 있을 적에 / 눈보라 헤치며 벌판을 달리는 /
기적도 정답게 울렸지 / 아 그때가 잊지 못할 시절이었네
〈바로 그날 밤〉1952년 신세영이 부른 노래로 1954년 7월 스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승리 부기(신카나리아) / 바로 그날 밤’ SP 음반에 실려있는 곡입니다.〈바로 그날 밤〉
전선으로 떠나던 날 밤을 회상하는 노랫말은 신세영의 애상적이면서도 비장함이 묻어 있는듯 불러 노래를 들은 장병들의 심정을 잘 표현한 진중가요(陣中歌謠)라고 봅니다.
1951년 발표해 히트한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전선야곡〉과 노랫말과 선율도 비슷해 그 후속곡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당시 녹음했던 레코드판은 전쟁의 와중에 없어져 1975년 11월 아세아레코드사를 통해서 다시 녹음해 발매를 하였던 것입니다. ‘흰눈’ ‘화롯불’ ‘눈보라’ 등 겨울을 잘 나타내는 노랫말이 추운 3번의 겨울에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가족을 그리는 심정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박광자〈이별의 서울정거장〉〈서울에 온 광자〉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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