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74. 한복남〈한 많은 대동강〉〈나그네 밤거리〉옥두옥〈청춘 부르스〉(2026.06.29.)
지난 24일은 작곡가 겸 가수, 도미도레코드사 설립자인 한복남(1919년∼1991년)님의 탄생일이었습니다.
오늘은 한복남 1958년〈한 많은 대동강〉1964년〈나그네 밤거리〉와 옥두옥 1948년〈눈물의 오리정〉1949년〈청춘 부르스〉4곡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한복남(韓福男) 본명은 한영순으로 1919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1991년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그는 고향에서 양복점을 경영했고, 1942년부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다가 해방 이듬해 1946년 월남해 서울 종로에서 양복점을 열어 양복을 잘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작곡가 박시춘과 김해송 등이 단골손님이 되었고, 특히 가수 이난영 부군 김해송이 운영하던 KPK악극단 무대에서 1948년 직접 작사·작곡한〈저무는 충무로〉를 취입해 데뷔한 후〈빈대떡 신사〉로 스타덤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51년 부산 국제시장에서 축음기 부속 판매사업을 하며 번 돈으로 도미도레코드사를 설립해 한정무〈꿈에 본 내고향〉금사향〈홍콩 아가씨〉을 발매해 성공한 후 신인가수 허민에〈페루샤 왕자〉를 취입 발매해 또다시 크게 히트를 하였습니다. 그후 황정자〈오동동 타령〉〈처녀 뱃사공〉손인호〈한많은 대동강〉등 600여 곡을 작곡하고, 본인이 부른〈빈대떡 신사〉〈엽전 열닷냥〉〈나그네 밤거리〉등을 히트시킨 1950년대∼1960년대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트였습니다.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창설 당시 경남지부장 역임.
–〈한 많은 대동강〉– 야인초 작사, 한복남 작곡, 손인호(1958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 아 아아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2절.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번 불러 본다 /
편지 한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소냐 / 아 아아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한 많은 대동강〉1958년 국민가수 손인호가 부른 노래로 황금심〈이별이 서러워〉(천봉/한복남)와 함께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이곡을 작사한 야인초(1919년〜1999년 본명 김봉철)의 고향은 황해도 박연, 작곡가 한복남은 평안남도 안주, 국민가수 손인호(1927년〜2016년)는 평안북도 창성으로 모두 한국전쟁 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대동강과 부벽루, 강에서 들려오던 뱃노래〈수심가〉그리고 모란봉, 을밀대, 부벽루를 노랫말에 넣고, 분단의 아픔을 나타내는 가로막힌 철조망으로 인해 편지 한 장 조차 전할 길 없는 원망을 담은 한 많은 설움을 노래해 1천만 실향민들의 아프고, 그리운 마음을 달래 주었을 것이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2019년 TV조선 ‘내일의 미스트롯’에서 송가인이 불러 진(眞)을 차지한 곡이기도 하죠.
☞ 작사가 야인초(野人草)는 황해도 박연에서 태어나 징용을 피해 일본으로 갔다 해방 후 귀국해 고향으로 가지 않고 부산 남항동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면서 한쪽에 국제시장에서 구입한 음반 제작설비를 갖추어 1947년 영도구 대평동1가 58번지에 부산 최초의 음반사 ‘코로나레코드사’를 설립해 1948년 이숙희〈부산 블루스〉을 발매했고, 작사가 한산도(1932년〜1998년 본명 한철웅, 함경북도 청진)는 한종명이란 예명으로 1948년〈고향 아닌 고향〉을 이곳에서 취입을 했다고 합니다. 1955년 변인복〈온천 에레지〉발매를 끝으로 1956년 대구에 있던 ‘유니온레코드사’에 양도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후 미도파레코드사 녹음기사로 일하다가 작사가로 변신해 고봉산〈용두산 엘레지〉김용만〈공양미 삼백석〉도미〈신라의 북소리〉방운아〈부산 행진곡〉손인호〈돌아가자 남해 고향〉황정자〈오동동 타령〉〈남원의 봄 사건〉등 100여 편을 남겼습니다.
–〈나그네 밤거리〉– 한복남 작사·작곡, 한복남(1964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외로운 밤거리 쓸쓸한 밤거리 / 반가이 맞아 줄 사람 없는 나그네 밤거리 /
네온의 불빛마저 나를 울리네 / 아아아 아아아 고독한 내 신세 / 나 혼자 울어야 하나
2절. 외로운 밤거리 쓸쓸한 밤거리 / 추억을 더듬어 보고 싶은 나그네 밤거리 /
사라진 그 님이여 만날 길 없네 / 아아아 아아아 어디로 갔을까 / 나 혼자 울어야 하나
〈나그네 밤거리〉1964년 국민가수 한복남이 부른 노래로 1965년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나그네 밤거리 / 그대는 내 마음속에’ 앨범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음반 Side A면. 한복남〈나그네 밤거리〉박재란〈우리의 아베크코스〉박상무〈다시찾은 산장〉조애희〈민들레꽃도 봄이면 핀다〉강수향〈명동의 장미〉황금심〈눈오는 밤〉Side B면. 박재란〈그대는 내 마음속에〉강수향〈외로운 태양〉최정〈우리들의 썬데이〉박상무〈굳빠이 키스〉〈첫사랑 메리〉강수향·조애희〈딸이 좋아요〉12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영화. 제작 홍성칠, 기획 최창수·서주현, 각본 편거영, 음악 김용환, 최영철 감독. 배우 김승호, 김지미, 남궁원, 도금봉, 김동원, 서영춘, 장훈, 김칠성, 신미림, 최삼, 도성희, 임예심, 옥상미, 아역배우 김용연 등이 출연해 1965년 11월 25일 개봉된 영화입니다. 타이틀 “만천하 어버이들에게 묻노라! 낳은 정이 크더냐? 기른 정이 크더냐? 자식을 낳은 어머니도 자식을 기른 아버지도 눈물없이 볼 수 없는 감동(感動)의 명화(名畫)?”
줄거리는,「그들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자식의 출세를 위해 남자(남궁원)의 어머니는 아들이 그녀(김지미)를 배반하고 어느 부잣집 딸(도금봉)과 혼인하게 한다. 그후 그녀는 아들을 낳았지만 그의 어머니에게 빼앗기고 그 아이는 한 지게꾼(김승호)에 의해 키워진다. 그러나 그렇게 자식을 위해 맞아들인 며느리는 너무나도 오만하고 도도했다. 그의 어머니는 지난 일을 후회하며 탄식 속에 나날을 보내던 중 아들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랑하던 그녀와 아들을 만나게 되며 비극의 막은 내린다.」또다른 주제가로 남상규〈철수야 가거라〉(한산도/백영호)도 있습니다.「1절. 빗속에 바람속에 웃고울며 지난 세월 / 흘러간 그 세월에 정이 들은 너와 난데 / 하늘이 무너져도 세상을 다 준다 해도 / 어이해서 보낼 손가 철수야 내 아들아.
2절. 꿈같이 지난 세월 웃고 울며 보낸 세월 / 외로운 이내 몸이 너 하나를 의지해서 / 살아온 내 정성을 너만은 알아주겠지 / 변치말자 영원토록 철수야 내 아들아.」
–〈눈물의 오리정〉– 김소석 작사, 박시춘 작곡, 옥두옥·박재홍(1948년 오케레코드사)
1절. 춘향아 우지마라 우지마라 춘향아 / 가면은 아주 가며 간다고 잊을소냐 /
사창에 달 밝거든 나 본 듯이 보아다오 / 옥가락지 둥글듯이 옥가락지 둥글 듯이 /
우리 사랑 끝이 없으리
2절. 도련님 못가요 나를두고 가지마오 / 하룻밤 드새이고 곧 갈길을 왜 왔어요 /
독수공방 긴긴 밤을 나 혼자서 어이새나 / 짝을 잃은 외기러기 짝을 잃은 외기러기 /
우는소리 어이 듣느냐
〈눈물의 오리정〉1948년 옥두옥, 박재홍이 듀엣으로 부른 노래로서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눈물의 오리정 / 홍장미 처녀(김인애)’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1935년 개관한 약초극장(스카라극장 전신)의 약초악극단이 공연한 악극 ‘춘향전’에서 이도령역 남인수와 춘향역 이화자가 오리정에서 이별하는 장면에서 부른 곡을 옥두옥·박재홍이 듀엣으로 불러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곡입니다. 국민가수 박재홍님의 데뷔곡입니다.
박재홍(1924년∼1989년)은 1946년 중앙극장에서 4,000여 명이 참여해 3일간 열린 오케레코드사 주최 ‘신인가수 콩쿨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는데, 당시 심사위원이 작곡가 박시춘, KPK악극단장 김해송, 가요황제 남인수였다고 합니다. 4위에 입상했던 가수가〈향기품은 군사우편〉의 유춘산이고,〈꽃중의 꽃〉원방현은 탈락했다고 합니다.
1948년〈눈물의 오리정〉으로 데뷔했습니다. 옥두옥(본명 김문찬)은 192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1947년 송민도·원방현·금사향과‘ KBS 전속가수 1기’로 합격했습니다. 김해송 작명의 예명 ‘옥두옥’(玉斗玉)은 “옥이 말(斗)째로 있는 가운데 으뜸의 옥’이다. 전쟁전 재미교포 2세와 혼인 후에 미국으로 이민해 1956년 ‘RCA Victor’레코드사에서 예명 Moon Kim으로 장세정〈역마차〉영어 버전〈Kanda Kanda〉와 현인〈고향만리〉영어 버전〈East of Make Believe〉2곡으로 싱글 앨범을 발매해 국내로 역수입됐고, 1959년에도 앨범을 재발매했습니다. 1959년 미국으로 진출한 ‘김시스터즈’ 보다 훨씬 빠른시기에 미국으로 진출한 국민가수 옥두옥이 부른 노래는 1947년〈목장의 노래〉(유호/박시춘), 1949년〈남원 소식〉(김건/박시춘)〈애수의 네온가〉(김초향=김건/박시춘) 등이 있습니다. 오늘 독자논단에 실은〈눈물의 오리정〉은 옥두옥님께서 1990년 고국을 일시 귀국해서 8월 6일 방영된 ‘가요무대’에서 노래하시는 장면의 영상입니다.
☞ ‘오리정’(五里亭)은 조선시대 관아에서 오리 떨어진 곳에 지은 정자인데, 관아에 온 손님을 떠나 보낼 때에는 반드시 오리정에서 주안상(酒案床)을 마련해 시(詩)를 주고 받으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었고, 떠날 사람과 서로의 정을 나누어 배웅하였습니다. 지금의 5리는 2km이지만 당시에는 1리가 2km라 10km 떨어진 곳에 지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민족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수백개의 오리정까지도 모두 없앴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전주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1953년에 세워져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된 오리정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제대로된 고정을 거치치않아 정(亭)이 아닌 루(樓) 형태를 보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 인근에는 ‘춘향이 눈물방죽’ ‘춘향이 버선밭’ ‘말달리기 언덕’ 등의 유적이 있습니다.
–〈청춘 부르스〉– 김건(김소석) 작사, 박시춘 작곡, 옥두옥(1949년 럭키레코드사)
1절. 아 님이시여 아 님이시여 / 어디로 가셨나요 어디로 가셨나요 /
나일락 꽃잎이 창 밖에 날려도 / 행여나 님이신가 카네션 꺽어들고 나가보건만 /
오늘도 밤 하늘엔 오늘도 밤 하늘엔 / 별빛만 우네
2절. 아 님이시여 아 님이시여 / 어디로 가셨나요 어디로 가셨나요 /
물제비 낡에 콧노래 감기면 / 행여나 님이신가 꽃다발 받쳐들고 나가보건만 /
봄 버들 하늘하늘 봄 버들 하늘하늘 / 말이 없구료
〈청춘 부르스〉1949년 국민가수 옥두옥이 부른 노래로 럭키레코드사에서 처음으로 발매한 ‘신라의 달밤(현인) / 청춘 부르스’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당시〈신라의 달밤〉이 워낙 큰 인기를 받았지만〈청춘 부르스〉도 많은 인기를 얻은 곡입니다. 2026년 2월 17일 ‘1950년대를 빛낸 가수들’ 제10화 ‘해외 진출 선구자’ 옥두옥(Moon Kim)편「절정기를 빛낸 히트곡〈청춘 부르스〉- 1949년 옥두옥은〈청춘 부르스〉를 솔로 음반으로 출시한다. 해방 후 가수에서 작사가로 변모한 반야월의 노랫말과 백전노장 박시춘의 멜로디가 결합한 곡으로 서구적인 ‘부르스(Blues)’ 리듬을 차용해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나일락’, ‘카네션’과 같은 외래어 시어를 사용하여 도회적 감성을 강조했다. 옥두옥의 청아한 음색은 떠나간 임을 기다리는 애달픈 정서를 무겁지 않게, 감각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 유입된 서구 문화의 영향과 대중의 근대적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전통적인 기다림의 정서 위에 라일락과 카네이션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상징을 덧입힘으로써,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했다. 보다 자유롭고 낭만적 연애 감정을 지향했던 당시 청춘들의 욕구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선생님께서 부르시는〈청춘 부르스〉도 듣으시면 정말 정말 좋습니다.
지난 20일 우리나라 가요계의 큰별 국민가수 옥희님이 하늘이 별이 되셨다는 슬픔을 접했습니다. 본명 김광숙. 1953년 피난지 부산 출생으로 배화여중 3학년 때 국민가수 현미가 남편인 작곡가 이봉조에게 소개해 1968년 5인조 여성 걸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해 미국·캐나다 등지에서 공연을 하다 1974년〈나는 몰라요〉를 발표하며 솔로가수로 전향 1975년〈눈으로만 말해요〉1977년〈두 손을 잡아요〉〈이웃 사촌〉1981년〈옥희의 꿈〉1985년〈아내의 일기〉2003년〈소설 같은 사랑〉2007년〈돈 때문에〉2017년〈인생열차〉2024년〈고운 사랑〉등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대한가수협회(회장 박상철)에서는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영결식을 24일 오전 10시 서울 아산병원장례식장에서 진행했고, 조사는 박상철 대한가수협회장이 낭독했습니다. 지난 3월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정열의 꽃〉을 부르는 등 노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립고 애뜻한 마음을 담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몰라요〉– 김중순 작사, 김희갑 작곡, 옥희(1974년 서라벌레코드사)
1절.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 밤이 되면 별이 왜 우는지 /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 빗소리가 슬프다 해도 / 하얀 꿈속에 잠을 잤어요 /
무엇이 사랑인지 눈물인지 나는 몰라 /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
그 손짓이 무얼 말하는 지 /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 눈물 속에 꽃이 피는 걸
2절. 하얀 꿈속에 잠을 잤어요 / 무엇이 사랑인지 눈물인지 나는 몰라 /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 그 손짓이 무얼 말하는 지 /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
눈물 속에 꽃이 피는 걸
–〈이웃사촌〉– 엄진 작사, 엄진 작곡, 옥희(1976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그러길래 이웃은 사촌이라 하지요 / 멀리 있는 친척도 사촌만은 못해요 /
그 누구가 뭐래도 이 마음은 언제나 / 내 이웃의 슬픔을 내가 대신 하지요 /
그러길래 이웃은 사촌이라 하지요 / 멀리 있는 친척도 사촌만은 못해요 /
많은 것은 없어도 이 마음은 언제나 / 내 이웃의 괴로움 내가 대신 하지요
2절. 그러길래 이웃은 사촌이라 하지요 / 멀리 있는 친척도 사촌만은 못해요 /
그 누구가 뭐래도 이 마음은 언제나 / 내 이웃의 슬픔을 내가 대신 하지요 /
그러길래 이웃은 사촌이라 하지요 / 멀리 있는 친척도 사촌만은 못해요 /
그러길래 이웃은 사촌이라 하지요
1989년〈아내의 일기〉와 2026년 마지막 무대에서 부르는〈정열의 꽃〉도 올립니다.
다음엔 하이킹 하기 딱 좋은 7월을 맞아 도미〈하이킹의 노래〉등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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