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218. 이난영〈다방의 푸른 꿈〉(2025.06.02.)
내일은 선진 대한민국의 제 21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로서 신성한 한표를 행사합시다. 그리고 5일은 보리가 익어 먹기 시작하고, 벼 등 곡식의 씨를 뿌리는 망종(芒種)입니다.
또한 6일은 조국과 국민을 위해 희생하신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忠節을 추모하는 국가 추념일 현충일(顯忠日)이고, ‘영원한 목포의 딸’ 이난영이 태어난 날입니다.
이난영(본명 이옥례)는 1916년 전라남도 목포시 양동에서 태어나 3살 위 오빠 작곡가 이봉룡과 함께 온갖 고생을 하며 자랐습니다. 16살 때 제주도 ‘삼천가극단’ 순회 공연 막간 가수로 따라 다니다가 일본 공연 때에 작사가 강사랑의 눈에 띄어 오케레코드사 이철 사장에게 추천돼 1933년〈고적〉(김능인/문호월)을 처음 취입했고, 그후 1934년〈봄맞이〉〈목포의 눈물〉이 빅히트하여 가요계 스타로 등장했습니다.
1936년 작곡가 김해송과 혼인했고, 1965년 하늘의 별이되셨습니다. 1950년대말〜196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김씨스터즈 김숙자와 김애자가 딸이며, 다른 멤버 이민자는 이봉룡의 딸입니다. 1939년 박향림, 이화자, 장세정, 김능자, 서봉희, 홍청자, 이준희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 ‘저고리시스터즈’를 결성해 활동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1935년〈목포의 눈물〉1937년〈해조곡〉1941년〈진달래 시첩〉1942년〈목포는 항구다〉등 다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난영 정식 데뷔곡 1933년〈불사조〉를 비롯 1936년〈낙화의 눈물〉1939년〈다방의 푸른 꿈〉〈목포의 추억〉1940년〈눈감은 포구〉〈항구야 울지마라〉글입니다.
–〈불사조〉– 금능인 작사, 문호월 작곡, 이난영(1933년 오케레코드사)
1절. 능라 적삼 옷깃을 여미고 여미면서 / 구슬같은 눈물방울 소매를 적실 때 /
장부의 철석간장이 녹고 또 녹아도 / 한양가는 청노새 발걸음이 바쁘다
2절. 금의환향 하실 날 바라고 바라면서 / 송죽매란 사군자로 수놓아 드릴 때 /
낭자의 일편단심을 참고 또 참아도 / 해 떨어진 석양길에 설바람이 차구나
3절. 님이 주신 옥지환 만지고 만지면서 / 삼단같은 검은 머리 거울에 비낄 때 /
님 가신 천리원정이 멀고 또 멀어도 / 야월삼경 깊은 밤에 오동잎만 날리네
〈불사조〉1933년 이난영이 부른 데뷔곡으로 11월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고적 / 불사조’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1933년 7월 5일부터 ‘극단 신무대’가 단성사에서 공연한 금능인 원작 3막 연극 ‘비극 불사조’에서 막간 무대에서 부른 연극주제가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곡은 이난영을 가수라는 이름을 알린 곡입니다. 또한 1938년 11월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난영 걸작집’ 타이틀곡으로〈봄맞이〉〈목포의 눈물〉〈알아 달라우요〉〈아버지는 어데로〉〈아! 글쎄 어쩌면〉등 6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목포의 혼(魂) 이난영은 오케레코드사 전속 가수로 10년 간 200여 곡을 발표했습니다. 1절 첫소절에 나오는 능라적삼(綾羅赤衫)은 ‘두꺼운 비단과 얇은 비단으로 만든 윗도리에 입는 홑옷’을 말합니다. ‘모시적삼’ ‘명주적삼’ ‘삼베적삼’ ‘무명적삼’ 등이 있습니다.
–〈낙화의 눈물〉– 금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1936년 오케레코드사)
1절. 궂은비 소리 처량한 달빛 잠자는 밤에는 / 잠을 못자고 우는 낙화와 같은 이내 몸 / 남북 천만리래도 끝도 모르게 날도록 / 작은 이 몸을 둘 곳이 그 어데이려뇨
2절. 마음에 없는 웃음과 양심이 아픈 거짓말 / 내일을 내가 모르고 몸부림친 지 몇해뇨 / 날개도 없는 구름도 가면 갈 곳이 있건만 / 낙화와 같은 이내 몸 갈 곳이 어데뇨
3절. 삼월풍아 불어라 봄바람이나 아리다 / 향기도 없다고 나비도 발길 끊은지 오래니
/ 어이 하리오 서럽다 거츤 발길에 차이고 / 인생 백년에 그 운명 한줄기 눈물뿐
〈낙화의 눈물〉1936년 이난영이 부른 노래로 6월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낙화의 눈물 / 님 사는 마을(강남향)’ SP음반에 실려 있는 재즈송입니다. ‘낙화’(落花)가 제목에 들어간 전통가요는 1927년 이정숙〈낙화유수〉(일명 강남달), 1941년 김정구〈낙화유수〉1942년 남인수〈낙화유수〉1968년 이미자 선생님〈부여 낙화암〉등이 있습니다.
–〈다방의 푸른 꿈〉–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이난영(1939년 오케레코드사)
1절. 내 뿜는 담배연기 끝에 흐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누나 부르누나 / 흘러간 꿈은 찾을 길
없어 연기를 따라 헤매는 마음 /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
내 뿜는 담배연기 끝에 / 흐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2절. 조우는는 푸른 등불 아래 흘러간 그날 밤이 새롭다 / 조그만 찻집에서 만나던
그날 밤 / 목메어 부른다 그리운 그 밤을 부르누나 부르누나 / 서리에 시든 장미화
더냐 시들은 사랑 스러진 그 밤 / 그대는 가고 나 혼자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
저무는 푸른 등불 아래 / 흘러간 그날 밤이 새롭다
〈다방의 푸른 꿈〉1939년 이난영이 부른 노래로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부르스곡으로 손꼽히는 노래입니다. 당시 이난영은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얻었는데, 전통가요계에 재즈의 시대를 개척한 곡입니다.
1936년 12월 24일 요리집 ‘식도원’에서 이난영과 혼인한 김해송은 1939년 파격적인 재즈풍 블루스곡〈다방의 푸른 꿈〉을 만들어 생일 축하선물로 주었습니다. 당시 주로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었지만 이난영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 우단드레스에 검은 장갑을 끼고, 담배를 무는 등 요염하게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2015년 아버지 김해송, 어머니 이난영, 그리고 딸 김숙자, 김애자와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의 딸 이민자로 결성된 ‘3인조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음악 인생을 담은 다큐멘트리 영화 ‘다방의 푸른 꿈’이 제작되어 그해 ‘제11회 제천 국제영화제’ 시사회에 초청돼 개막작으로 상영되었고, 2017년 1월 29일에는 극장에서도 개봉이 되었습니다. 영화는 감독 김대현, 출연 김시스터즈, 이난영, 김해송, 손석우, 토미빅 등이 있습니다.「“한국에서 온 세 자매를 소개하겠습니다. 멋진 노래는 물론, 악기를 20가지나 연주할 줄 아는 소녀들이죠. 김시스터즈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통해 국내 최초 걸그룹 결성! 듣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하모니와 멜로디 그리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그리고 가야금, 장구, 기타, 트롬본, 벤조, 클라리넷, 아이리시 백파이프 등 13개가 넘는 다양한 악기들로 펼치는 환상적인 무대까지! 국내는 물론 당대 최고의 스타인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롤링스톤즈와 어깨를 겨누며 미국의 인기 TV 쇼 ‘애드 설리번 쇼’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월드스타가 되는 김시스터즈! 꿈, 사랑, 낭만 가득, 그리고 뜨거운 감동이 있는 김시스터즈의 음악과 함께한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영화는 2016년 제4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습니다. 김시스터즈는 1953년부터 미8군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59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 당시 유명했던 쇼프로 ‘설리번쇼’에 ‘비틀즈’ 보다 많은 22번을 출연했고, 1963년에는 이난영도 ‘설리번쇼’에 초청되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목포의 추억〉– 문일석 작사, 이봉룡 작곡, 이난영(1939년 오케레코드사)
1절. 고하도 등대불이 깜박이는 선창에서 / 목 놓아 몸부림쳐 자즈러질 때 /
윤선은 칼섬으로 돌아 나갔소 / 이것이 악착한 사랑의 판결이라 아 /
아 아 아아 그대로 순종하고 / 내 고향 땅을 버렸소
2절. 어차피 가서 본들 별수 없는 고장이나 / 눈물의 타국에서 내 울 때마다 /
갓바우 뜨는 달이 뒷개에 지면은 / 굴 캐는 아가씨 노래에 잠이 드는 /
아 아 아아 남쪽의 저 하늘가 / 고향 목포에 가고파
〈목포의 추억〉1939년 이난영이 부른 노래로서 1월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인생 간주곡(남인수) / 목포의 추억’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목포의 눈물〉노랫말을 지은 문일석(본명 윤재희)이 가사를 쓰고, 이난영의 3살 위 오빠인 이봉룡이 멜로디를 붙였는데, 남매의 고향 ‘목포’ 사랑이 어떠했는지를 잘 담아 낸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떠난 고향 목포에서 바라 본 ‘고하도 선창과 등대불’과 ‘윤선과 캄섬’ ‘갑바우에 뜨는 달’ ‘굴 캐는 아가씨의 노랫소리’를 살고 있던 서울에서 남쪽 목포를 바라 보면서 고향에 가고픈 심정을 노래한〈목포의 추억〉입니다. 제주에서 잠시 해녀일도 했다네요.
–〈눈 감은 포구〉–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난영(1940년 오케레코드사)
1절. 달 뜨는 포구에선 정든 님도 울더라 / 잡으시오 따르리다 술잔에 남실남실 /
이별주를 나누며 울었더란다
2절. 님 가는 내 마음엔 온 세상이 울더라 / 눈 감으소 안 보리다 손잡고 돌아설 제 /
고동 소리 싫어서 귀를 막았다
3절. 창천을 바라보니 은하수도 울더라 / 잊으시오 잊으리다 마지막 헤어질 제 /
절벽에서 떨어진 마음이더라
〈눈 감은 포구〉1940년 이난영이 부른 노래로서 11월에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불어라 쌍고동 / 눈 감은 포구’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이별의 슬픈 감정을 잘 표현한 노래라고 할 수 있는〈눈 감은 포구〉는〈남경 아가씨〉〈내 마음의 슬픈 문〉〈가거라 똑딱선〉에 이어 발표한 곡으로 월북작가 조명암의 작품이라 해서 1950년대 말에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개사한 1963년 황정자가 부른〈정든 포구〉의 원곡입니다.
–〈항구야 울지마라〉–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난영(1940년 오케레코드사)
1절. 항구야 울지 마라 구슬픈 기적 소리 / 안타까운 이별에 눈물 어린다 /
사랑이란 알고도 열의 열 번 속으니 / 상처 받은 내 마음이 몸부림친다
2절. 항구야 울지 마라 떠도는 갈매기야 / 날개조차 부서진 내 사랑이다 /
떠나가는 사람을 원망하면 무얼 해 / 파도 치는 선창머리 해가 저문다
3절. 항구야 울지 마라 밤거리 네온사인 / 얼룩이 진 남치마 야속스럽다 /
붉은 입술 싸늘한 눈물 젖는 내 얼굴 / 상처 받은 첫사랑에 시들어 간다
〈항구야 울지마라〉1940년 이난영이 부른 노래로서 3월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향수 열차(이인권) / 항구야 울지마라’ SP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sbs 유영재의 가요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발췌「1933년 OK레코드사 사장 이철은 이난영이란 소녀 가수를 발굴하게 된다. 여배우도 아니고 권번 기생도 아닌 순수한 가수의 등장인 셈이다. 일본을 순회 공연중인 ‘태양 극단’에서 노래하는 16세 소녀를 빼내왔는데, 바로 이난영이다. 1933년 가을 <불사조>, <밤고개를 넘어서> 두 곡을 부르면서부터 꾸준히 인기를 얻어 온 이난영은 1935년 여름 <목포의 눈물>로 일약 유명한 가수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는 OK레코드사에서 향토 찬가 가사 모집을 하였는데 목포의 문일석이라는 청년이 투고하여 당선된 작품으로 손목인의 곡이다.」
1991년 2월 9일 KBS2TV ‘쇼 토요특급’ 이미자 선생님〈비목〉(한명희/장일남)입니다.
다음에는 이해연〈소주 뱃사공〉〈울어라 대동강〉백일희〈눈물의 양귀비〉등 글입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상기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