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 추억의 국민 애창곡〈교가(校歌)〉(2021.05.17.)
오늘은 ‘성년의 날’입니다. 성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일깨워주고 자부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시행일 1973년 3월 30일),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입니다. 우리나라 성년례(成年禮)는 고려 광종 16년(965년)에 세자에게 원복(元服)을 입혔다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교가(校歌), 어학사전에는「학교를 상징하는 노래, 학교의 정신이나 특징 따위를 담고 있다.
영어 「a school song」백과사전에서 살펴 보면,「일반적으로 학교의 교육 목표 · 이상 · 특징 등을 나타내는 노랫말에 곡을 붙여 만든다. 부르기 쉬운 박자와 리듬 · 선율을 사용하고, 노랫말도 평이하게 짓는다. 노랫말의 내용은 대개 면학정신이 깃들여 있는데, 때로는 학교의 소재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일도 있다.」요약 설명으로는「학교의 기풍과 건학정신을 발양시킬 목적으로 특별히 지어 학생들에게 부르게 하는 노래」라고 설명되어 있기도 합니다.
오늘은 경기도 구리시에 소재하고 있는「인창초등학교」의 개교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인창초등학교 주소지는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37-13(인창동 546-9)이고, 교목은 느티나무, 교화는 개나리, 교훈은「바르게, 슬기롭게, 튼튼하게」입니다. 인창초 졸업생의 자긍심은 최고….. 학교의 연혁은 1921년 5월 17일 양주군 인창공립보통학교 개교(4년제, 사립 망우학교 편입), 1937년 4월 1일 6년제로 개편, 1941년 1월 1일「인창국민학교」로 개칭됐고, 1945년 10월 1일 이한상 초대 교장선생님 취임, 1970년 10월 2일「어린이 헌장탑」설치, 1974년 2월 15일 제 50회 졸업(독자 포함), 1986년 5월 30일「체육관 개관」, 1996년 3월 1일「인창초등학교」로 개칭됐고, 2008년 3월 1일「인창병설유치원」개원, 2021년 3월 1일 제 25대 이신란 교장선생님 취임(현재), 2021년 1월 15일 개최됐던 제 97회 졸업생까지 총 졸업생 수는 20,759명입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인창초등학교에서 분교된 초등학교는 서울특별시 신내동의 중화초등학교(1946년 11월 7일,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편입), 구리시 갈매초등학교(1944년 4월 1일), 내양초등학교(1969년 12월 10일에 갈매초등학교에서 분교), 토평초등학교(1971년 3월 1일) 등입니다. 현재 19학급에 총학생수 482명(남학생 265명, 여학생 217명), 교직원 48분입니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인창초등학교 제23회 졸업생 김학운(초대 구리시민장학회이사장)님은 장학금 5천만원을 기부했고, 학교에선 “함께 100년 다 같이 인창” 기념석을 교정에 세웠습니다.
☞ 김학운(金學云): 1935년 구리시 토평동 출생, 인창초등학교 23회, 경희대 경영대학원수료
1991년 초대 경기도의원(교육분과위, 구리시 제3선거구),역임, 구리중학교·구리여자고등학교 육성회장, 현재 구리시민장학회 이사,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
– 인창초등학교〈교가〉– 이한상 작사, 임용균 작곡(1945년)
1절, 삼각산 동남 허(墟)에 구리면(시) 화려하다 / 아계산 내린 맥에 장엄한 우리 학교
인덕을 근본으로 주초를 삼고 / 창생을 교육하네 맘껏 배우자
무궁화 무궁화 삼천리에 / 인창교 인창교 빛나네
2절, 지덕체 삼육으로 심신을 연마하니 / 나라엔 기둥되고 가정엔 효도로다
성실을 근본으로 좌우명 삼고 / 창생을 교육하는 요람이 되세
무궁화 무궁화 삼천리에 / 인창교 인창교 빛나네
필자에게는 중화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2006년 업무적인 일로 만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주 1〜2번 말벗과 술벗인 前 구리전통시장상인회 회장 박홍기, 50여 년 지난 구리시장을 현대화 시켜 놓고 퇴임 후 지금도 “구리시소상공인연합회” 회장으로 상인들의 등대불인 친구입니다.
1960년〜70년대 소풍 가는 날,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중랑구,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와 경기도 남양주시, 의정부시, 포천시 등에 있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은 구리시 ‘동구릉’으로 소풍을 많이 왔을 것입니다. 서울쪽에서 오는 학생들은 55번 창진운수(봉천동↔청량리↔교문리) 버스를 타고 교문네거리에서 내려 동구릉까지 걸어 갈 때, 약 600m 정도 걸으면 왼쪽에 우뚝솟은 교문(校門)이 인창초등학교 교문이고 2.8km를 더 걸어가면 동구릉이었습니다.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셔서 싸주신 김밥 두 줄과 사이다 한 병, 그리고 맛동산 한봉지를 가방에 집어넣고 동구릉으로 소풍을 가던 때가 생각이 나실 것입니다. 부잣집 학생들은 귀하디 귀했던 바나나를 비롯한 사과, 배 등 과일과 쏘세지, 햄 반찬 등을 한가득 짊어졌지만 발걸음 만큼은 가볍게 걸어갔던 동구릉 소풍 길, 장기자랑과 보물찾기, 친구들과 웃고 또 웃던 동구릉 소풍..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제국 말기 배재학당·이화학당 등 여러 사립학교들이 설립된 뒤, 각 학교에서 교가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새로 작곡된 곡이 아니라 미국 등 여러나라의 외국곡에 한글로 된 노랫말을 붙여 부른 것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한글로 된 노랫말과 서양곡이 불균형을 이루어 비음악성이 노출되기도 했고, 초창기에는 노랫말과 음악이 교가라기 보다는 행진곡이나 응원가와 같은 성질을 띄기도 했습니다. 초기의 교가들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외국곡에 가사를 지어 붙였고, 또한 작사가들은 음악, 특히 성악의 억양을 잘 몰랐기 때문에 순탄하게 부르기가 힘든 것이 많았습니다. 실례로 1900년에 제정된 평양 광성학교(光成學校, 1984년 설립)의 교가는 리듬의 강약에 따라 어울리게 붙여야 할 가사를 제대로 붙이지 못해 부르기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교가는「1절, 단군기자 도읍처로 이름높은 우리평양 / 모란봉과 대동강수 기기하고 양양하다. 2절, 하나님의 명을 받은 우리 광성고등학교 / 남산반석 높이 섰으니 반도강산에 빛을 이루었네.」모든 교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교의 위치를 설명하는 교가로는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 1905년 설립)의 “봉황산이 마주앉고 금강의 흐르는 곳에”라든가, 정신학교의 “삼각산은 높이 솟았고 / 양강수 빛난 곳 반 공중에 화려한 집은 우리 정신학교라”, 그리고 학교의 면학정신을 고취한 교가의 예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평안남도 강서에 세운 초등학교 성격의 점진학교(漸進學校, 1899년 설립) 교가 “학업에 정진하며 낙심말고 하겠다하세”와 미국의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 설립한 여성교육기관 이화학당(梨花學堂, 1886년 설립) 교가 “지덕체 삼육으로써 여자를 배양하세.” 등이 있습니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교가는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후, 이듬해 고종황제께서 교명을 지어 하사하신 배재학당(培材學堂, 1885년 설립)의 교가로 가사는,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무궁하도록/ 라라라라 시스붐바 배재학당 시스붐바/ 라라라라 시스붐바 배재학당 시스붐바.”였습니다.
독자는 1972년 5월초까지 고향 ‘명지초등학교’(1909년 7월 25일 개교, 부산 강서구 명지동)에 다녔습니다. 고향을 떠나서온 지 30년 만인 2002년 다니었던 ‘명지초등학교’를 찾아봤습니다. 30년 전과 거의 변한게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 다녀온 지도 벌써 5년이 지났군요. 지금도 1절은 보지 않고도 부를 수 있는 어릴 적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명지초등학교’ 교가
우리모두 올해엔 잠시 시간을 내어 어린시절 다녔던 초등학교를 한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 명지초등학교〈교가〉–
1절, 낙동강 맑은 물에 마음을 씻고 / 기름진 옥토에 몸을 기르며
힘차게 갈고 닦아 곱게 자라서 / 우리나라 앞장서는 명지 어린이
영원히 빛나리라 우리의 전통 / 그 이름 성스럽다 우리 명지교
2절, 낙동강 유구히 남으로 흘러 / 이 나라 아름답게 수를 놓으며
자라날 이 고장을 이뤄 주시니 / 여기가 배움의 집 우리 명지교
영원히 빛나리라 우리의 전통 / 그 이름 성스럽다 우리 명지교
독자가 1974년부터 1980년까지 6년간 다녔던 남양주시 도농동 소재 명문 동화 중·고등학교
1950년 학교법인 도농학원 설립, 1973년 도농종합고등학교 개교, 1976년 동화고등학교 변경,
2021년 2월 4일 제46회 졸업생 배출(총 졸업생 24,387명), 2020년 전국 일반고 순위 18위,
2021년 4월말 현재 학생수 1,261명, 교직원수 106명(교정 한상현), 교목 향나무, 교화 장미
– 동화중·고등학교〈교가〉- 주태익 작사, 박재훈 작곡
1절. 한강수 흐르는 황금산 기슭 / 튼튼한 터위에 세워진 학원
굳세고 슬기로운 아들 딸들이 / 배우며 자라나는 동화의 동산
2절. 깨닫는 진리는 향토의 새 꿈 / 배우는 살림은 형제의 사랑
늠름히 살쪄가는 동화 학우들 / 어둠을 헤치고 횃불을 들리
(후렴) 서로 서로 얽혀진 정도의 사랑 / 근면하고 탐구하는 배움의 터전
우리 우리 동화학교 길이 빛나리 / 우리 우리 동화학교 길이 빛나리
교가 1절은 안 보고도 부를 줄 아는데, 2절을 아는 재학생과 졸업생 들은 거의 없더라.(^^)
지난달 24일, 일본에서는 특별한 교가가 울려퍼졌습니다. 일본 야구의 성지로 불리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甲子園)구장, 봄철에 개최되는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일명 고시엔)에 출전한 한국계 교토(京都)국제고가 연장 접전 끝에 시바타고(미야기현)에 5대 4로 역전승을 거둬, 고시엔 전통에 따라 상대팀이 부동자세로 경의를 표하는 가운데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던 것입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교가를 NHK 방송에선 ‘동해 바다 건너서’를 ‘동쪽의 바다를 건너서’라는 일본어로 된 자막을 함께 붙혀서 일본전역에 생방송 중계방송을 통해 전파를 했던 것입니다.
그 날 한국어 교가가 두 번 울렸는데 1회말 공격이 끝난 후와 경기가 끝난 후였던 것입니다.
이 학교의 왕〇일 전 이사장은 “두 차례 모두 NHK 방송을 통해 일본 전국에 생방송됐습니다.
“한국어 교가가 방송될 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고 감격해 하면서 인터뷰했습니다.
2020년 강릉시에서는「관내 초·중·고 29개교의 학교와 재학생, 졸업생이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교가를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음원을 제작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시인 변영로(1898년〜1961년, 號 樹州, 서울 가회동 출생)과 노자영(1898년〜1940년, 號 春城, 황해도 송화 출생), 박종화(1901년〜1981년, 號 月灘, 서울 출생), 황석우(1895년〜1959년, 號 象牙塔, 서울 출생) 등이 주축이 되어서 ‘시 전문 동인지’「장미촌(薔微村)」을 창간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잡지는 3월 10일「청년」, 7월 12일「신천지」를 창간, 8월에는 염상섭이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단편소설「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월간「개벽」에 10월까지 3회에 걸쳐 연재, 10월 19일 임시정부 주간지「선전」이 창간된 해가 1921년입니다.
2011년엔 문화재청에서 우리나라 근대시기 문학작품인 김소월(1902년〜1934년, 본명 김정식, 평북 구성 출생)이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에서 발간한 초간 본 시집「진달래꽃」2종 4점(진달래꽃, 먼 후일,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 127개 작품 수록)을 근대 문학작품 최초의 문화재로 등록했습니다. 독자는 지난달 11일 ‘TV쇼 진품명품’ 방송에서 1924년 발간된 변영로의 제1시집「조선의 마음」이 감정가 3,000만원에 책정된 것을 봤습니다. 1921년 3월 19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년〜1946년, 號 晶月, 경기도 수원 출생)이 서울에서 열린 최초의 서양화(유화) 전시회를 경성일보사 내청각(來靑閣) 전시장에서 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21년은 대중가요 가수 박단마(개성,〈맹꽁이 타령〉〈슈샤인 보이〉〈아리랑 목동〉), 장세정(평양,〈연락선은 떠난다〉〈역마차〉〈울어라 은방울〉), 황금심(부산 동래,〈외로운 가로등〉〈알뜰한 당신〉〈삼다도 소식〉〈뽕따러 가세〉) 등이 출생하신 해였던 것입니다.
영상은 (사)평생교육컨텐츠협회(회장 이병철)가 2015년부터 구리시 곳곳에서 개최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인성을 주제로 한 종합문화행사인 ‘대한민국 인성영화제’의 공식 노래인〈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2013년 구리시 동인초교 3학년 이채현 작사/작곡, MV 2015년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시립합창단)과 2016년 인창초교(5/3) 어린이들의〈교실에서 찾은 희망〉입니다.
다음에는 백년설의〈번지 없는 주막〉〈나그네 설움〉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 독자가 뽑은 이미자 선생님 명곡 110곡 3-3(작사가/작곡가) 】
〈아네모네〉(1968년 정두수/박춘석), 〈아빠의 이름은〉(1974년 백영호 작사·작곡)
〈안오실까봐〉(1972년 유정/고봉산), 〈어이해 못오나〉(1970년 정두수/고봉산)
〈엘레지의 여왕〉(1967년 정두수/박춘석), 〈여객선〉(1978년 박춘석 작사·작곡)
〈여자의 마음 2〉(1973년 김중순/고봉산), 〈여자 하숙생〉(1969년 백영호 작사·작곡)
〈연주대 가는 길〉(1969년 이석정/박춘석), 〈영산강 뱃노래〉(1971년 강대선/백영호)
〈옥이엄마〉(1964년 한산도/백영호), 〈유달산아 말해다오〉(1967년 반야월/고봉산)
〈유자꽃 피는 내고향〉(1967년 한산도/고봉산),〈임금님의 첫사랑〉(1967년 임희재/백영호)
〈잊을 수 없는 연인〉(1965년 한산도/백영호), 〈재일교포〉(1970년 이경재/박춘석)
〈저강은 알고 있다〉(1965년 유동일/백영호), 〈정동대감〉(1965년 신봉승/나화랑)
〈정든 님 실은 배〉(1972년 정두수/박춘석), 〈정든섬〉(1974년 정두수/박춘석)
〈정착지〉(1974년 정두수/박춘석), 〈정화〉(1978년 신봉승/이복윤)
〈제주 뱃사공〉(1967년 한산도/박춘석), 〈지평선은 말이없다〉(1966년 한산도/백영호)
〈진주빛 눈물〉(1968년 정두수/박춘석), 〈찔레꽃 피면〉(1972년 백조/유현파)
〈첫눈 내린 거리〉(1968년 이용일/백영호), 〈총각손님〉(1974년 차민호 작사·작곡)
〈추억의 하동포구〉(1968년 정두수/고봉산), 〈춘천댁 사공〉(1969년 배동욱/백영호)
〈타국에서〉(1975년 정두수/박춘석), 〈팔판동 아씨〉(1969년 이서구/백영호)
〈포항 소야곡〉(1965년 반야월/고봉산), 〈한많은 흑산도〉(1965년 반야월/이인권)
〈한번준 마음인데〉(1969년 정두수/박춘석), 〈한송이 해당화〉(1972년 정두수/고봉산)
〈홍도아가씨〉(1973년 김다양/남국인), 〈홍콩의 왼손잡이〉(1965년 한산도/백영호)
〈황진이의 첫사랑〉(1969년 정두수/박춘석), 〈황혼의 부르스〉(1968년 정두수/박춘석)
☞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18일) :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리기 위해 지정한 법정기념일
☞ 부처님 오신 날(19일) : 석가모니의 탄생일, 음력 4월 8일 ‘사월 초파일’ 또는 ‘석가탄신일’ 불교의 가장 큰 명절. 1975년 ‘석가 탄신일’, 2017년 10월 10일 ‘부처님 오신 날’로 변경 지정
☞ 부부의 날(21일) :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 1995년 어린이 날, 한 어린이가 TV에서 인터뷰 중 “우리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이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권재도 목사가 주창하여 민간단체인「부부의 날 위원회」를 만들어 ‘부부의 날’ 운동을 시작해 2003년 국회에 청원, 2007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5월 21일로 정해진 것은 ‘가정의 달 5월에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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