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38. 나애심〈백치 아다다〉〈세월이 가면〉〈영원한 사랑〉〈유랑의 여인〉 (2025.10.20.)
나애심(1930년〜2017년 본명 전봉선)의 고향은 평안남도 진남포. 1949년 연극배우, 1953년〈밤의 탱고〉로 가수로 데뷔해 300여 곡의 대중가요와 영화〈백치 아다다〉등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오빠는 작곡가 전오승, 딸은〈DDD〉가수 김혜림입니다.
–〈백치 아다다〉– 홍은원 작사, 김동진 작곡, 나애심(1956년 신신레코드사)
1절.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 검은 머리 큰 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
꽃가마에 미소 짓는 말 못하는 아다다야 / 차라리 모를 것을 짧은 날의 그 행복 /
가슴에 못박고서 떠나버린 님 그리워 / 별아래 울며 새는 검은 눈의 아아 아 아다다여
2절. 야속한 운명아래 맑은 순정 보람없이 / 비둘기의 깨어진 꿈 풀잎 뽑아 입에 물고 / 보금자리 쫒겨가는 애처로운 아다다야 / 산너머 바다 건너 행복 찾어 어데 갔나 /
말하라 바다 물결 보았는가 갈매기 떼 / 간곳이 어드메뇨 대답없는 아아 아 아다다야
〈백치 아다다〉나애심이 1956년 동명의 영화 ‘백치 아다다’에서 주연인 ‘아다다’역과 영화주제가를 직접 부른 노래로서 신신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센 / 백치 아다다’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작사가 홍은원(1922년〜1999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작곡가 김동진(1913년〜2009년)은 가곡〈가고파〉를 작곡하신 분입니다. 영화. 원작 계용묵, 제작 이철혁, 각본 한순화, 이강천 감독, 배우 한림, 나애심, 장민호, 주선태, 고선애, 강계식, 김정옥, 안나영, 황정순, 지계순 등이 출연해 1956년 11월 24일 서울「중앙극장」에서 개봉됐습니다. 제4회 아시아영화제 출품작, 한국영화 200선 작품.
타이틀 “한국영화사에 찬연히 빛나는 영화미의 극치!!” “쓰라린 인생의 흐름속에 사라진 숙명의 여인 ‘아다다’의 사랑과 꿈!!” “영화예술의 시야와 표현에 신경지(新境地)를 개척한 문제의 야심작!!” “1957년도 아세아영화제 출품 예정 작품” “백치(白癡) 아다다”
☞ 촬영 에피소드「그 당시에 나애심은 가수와 배우로서 누구보다 자부심이 있었는데, 대본을 받아 본 순간 대사가 거의 없는 언어장애인 역할이라 불만이었지만, 6개월의 촬영 기간동안 이강천 감독은 항상 검은 선그라스를 착용했는데, 그의 선그라스 아래에는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강천 감독의 5살된 딸도 언어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나애심은 ‘아다다’역을 위해서 온 몸을 던져 열연했다고 합니다.」영화와 주제가는 함께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1987년 3월 19일 임권택 감독, 배우 신혜수, 한지일, 전무송, 이경영, 박웅, 김지영, 김복희, 박지훈, 나정옥 등이 출연한 영화 ‘아다다’가 제작 개봉되기도 했고, 1983년 6월 11일 KBS1-TV ‘TV문학관 제88화’는 연출 유열, 주일청 극본, 탤런트 김일란, 김인문, 여운계, 전원주, 장학수, 남윤정, 이일웅, 김난영, 이치우 등이 출연해서 방송되었습니다.
계용묵(1904년〜1961년)이 1935년 5월 잡지『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줄거리는「김초시의 딸 확실은 선천적 벙어리로 ‘아다다’(나애심)로 불린다. 이웃의 중매로 논 한섬지기 지참금을 갖고 가난한 노총각(한림)에게 시집을 가자 집안의 생계가 나아진 5년 동안 대우 받으며 행복하게 살지만, 남편이 투기로 큰 돈을 벌어 첩까지 얻게되자 아다다는 미움과 학대를 당한 후 친정으로 쫒겨나지만 친정에서도 천대를 받고 살아가다 마을에서 아다다를 짝사랑하던 노총각 수롱(한림)과 평안북도 심미도로 야반도주한다. 수롱이 10년간 모아 둔 150원을 보여주면서 밭을 사겠다고 하자 아다다는 전 남편도 돈이 많아지자 자신을 구박하면서 버렸다는 생각에 새벽에 돈을 몰래 바다에 뿌린다. 이를 알게된 수롱이 달려가 바다에 뿌려진 돈을 보자 이성을 잃고 그녀를 발로 걷어차 바다에 빠뜨린다. 아다다는 발버둥치다 익사하고, 수롱은 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작시, 이진섭 작곡, 나애심(1956년 신신레코드사)
1절.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에 호숫가 가을에 공원 /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여 /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2절.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에 호숫가 가을에 공원 / 그 벤치 위에 나뭇
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여 /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나애심이 1956년에 부른 노래로서 4월에 신신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세월이 가면 / 슈벨트의 소야곡’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1959년 현인, 1968년 현미, 1972년 조용필, 1976년 가수 박인희가 리메이크해 더욱 유명해진 곡입니다. 특이한 점은 작사가와 작곡가, 가수가 동일시간과 공간에서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장소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1956년 3월 13일. 서울 명동에 소재한 막걸리집 ‘경상도집’ (‘은성’이라는 설도 있음) 시인 박인환과 극작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가수 나애심 등 몇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다가 술잔이 몇잔 돌자 자리에 함께 한 나애심에게 노래 한 곡을 요청하자 마땅한 노래가 없다며 청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때 시인 박인환(1926년〜1956년, 강원도 인제출생)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즉석에서 시(詩)를 지었고, 완성된 시에 이진섭이 단숨에 샹송곡풍의 악보를 그려 나애심에게 줬습니다. 악보를 받아 본 나애심이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니 그 곡이〈세월이 가면〉이었습니다. 나애심과 송지영이 자리를 뜬 1시간 후 테너인 임만섭과 소설가 이봉구가 새로 합석해 임만섭이 악보를 들고서〈세월이 가면〉을 부르니 노래 소리에 명동 거리를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 둘씩 술집 앞으로 몰려들어 즉석에서 듣고는 모두 박수를 쳤다 합니다.
이봉구 회고「〈세월이 가면〉첫 발표회는 동방살롱 앞 빈대떡집에서 열리게 되었다. 박인환은 벌써 흥분이 되어 대폿잔을 서너잔 들이켰고, 이진섭은 술잔을 든 채 악보를 펼쳐 놓고 손가락을 튕기는가 하면, 그 몸집과 우렁찬 성량을 자랑하는 테너 임만섭이 목청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모여들거나 말거나 이들 세 사람의 입에서는 샹송이 쉴 새 없이 흘러 나왔다. 빈대떡집 젊은 마담이 박인환의 어깨를 치면서 야무진 사투리로 말했다. “그 노래 눈물 난다. 인환이 어쩔라고 그런 노래를 지었노?”」
「목마와 숙녀」로 잘 알려진 시인 박인환은 이 노랫 시를 지은 지 1주일 후 작고하셨다고 합니다. 2012년 그의 고향인 인제읍 상동리에 ‘박인환 문학관’이 개관되었습니다.
나애심이 2017년 12월 20일 임종 직전에 딸 김혜림에게 불러준 곡도〈세월이 가면〉이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김혜림은 “나는 엄마가 활동하시는 걸 아예 못 봤다. 엄마는 그냥 내 엄마였다. 엄마가 날 늦둥이로 낳아 가수 활동한 것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영원한 사랑〉– 강남풍 작사, 전오승 작곡, 나애심(1956년 신신레코드사)
1절. 지금은 헤어졌을 망정 마음은 그대에게 있네 / 못 오실 님을 알면서도
기다려지는 내 마음 / 가슴 속 깊이 수 놓은 사랑 풀라면 더욱 엉컬어지는 /
마음의 사랑 변치 않는 영원한 내 사랑이여
2절. 순정을 바친 내 님이여 영원한 내 사랑이여 / 남 몰래 새긴 순정의 꿈
떠날 수 없는 첫사랑 / 언제나 오리 애타는 사랑 밤이면 더욱 아롱거리는 /
불타는 사랑 내 님이여 영원한 내 사랑이여
〈영원한 사랑〉나애심이 1956년 부른 노래로 신신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내고향으로 마차는 간다(명국환) / 영원한 사랑(나애심)’ 앨범에 실려 있는 부르스풍의 노래입니다.
2018년 2월 5일 KBS1-TV ‘가요무대’에서 ‘가요계의 영원한 별, 나애심을 기억하며’ 주제로 방송됐는데, 생전에 인연이 있었거나 추억이 있는 후배들이 출연해〈영원한 사랑〉은 국민가수 주현미가, 최백호는〈세월이 가면〉〈백치 아다다〉장은숙〈언제까지나〉장사익〈과거를 묻지마세요〉〈미사의 종〉정미조〈백치 아다다〉등을 불렀습니다.
–〈유랑의 여인〉– 세고천 작사, 전오승 작곡, 나애심(1964년 오아시스레코드사)
1절. 쓰라린 가슴을 안고 정처 없이 나는 가네 / 호롱불 토막집 찾아 엉켜진 마음
달래며 / 내일 밤은 어드메서 이 상처를 풀어 볼 것인가 / 부엉새 너는 목메어 우나
이 가슴 메어진다 / 어데론지 먼 그 곳에 내 마음 벌써 가 있네
2절. 내 사랑 버림을 받고 지향 없이 떠나가네 / 낮설은 타향에서 엉켜진 마음 달래며
/ 내 갈 곳이 어드메냐 정처 없이 나는 떠나가네 / 서산에 지는 해 낙조가 되고
애닲은 가슴만이 / 행복하던 그 시절을 마음 속 아로 새기네
〈유랑의 여인〉나애심이 1964년 부른 노래로서 6월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전오승·이현식 작곡집, 박재란·나애심·백조 1964년 톱힛트’ 앨범에 실려 있는 곡으로 음반 Side A면. 나애심〈가시돛인 로즈마리〉〈내사랑 그대여〉〈유랑의 여인〉〈사랑의 마술〉〈고향도 타향도 아닌〉백조자매〈푸른 모자〉Side B면. 박재란〈휘파람 림보〉〈기타소야곡〉〈행복의 메아리〉〈카페 부르스〉〈싸이클 하이킹〉〈굳나잇 왈스〉수록.
–〈D.D.D〉– 이건우 작사, 유영선 작곡, 김혜림(1989년)
1절. 그대와 나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기에 / 전화 다이얼에 맞춰 난 몰래 그대를
부르네 / 속삭이듯 마음을 끄는 다정한 그 목소리 / 언제 들어봐도 왠지 두눈에 이슬만
맺히네 / 더 이상 이제 나는 기다릴 수가 없어요 / 마지막 동전 하나 손 끝에서
떠나면 / D.D.D D.D.D 혼자선 너무나 외로워 / D.D.D D.D.D 가슴만 태우는 그대여
2절. 그대와 난 이렇게 멀리 헤어져 있기에 / 전화 다이얼에 맞춰 아쉬운 마음을
전하네 / 아련하게 나를 부르는 그대의 그 목소리 / 언제 들어봐도 왠지 마음만 조급해 지네 / 더 이상 이제 나는 기다릴 수가 없어요 / 마지막 동전 하나 손 끝에서 떠나면
D.D.D D.D.D 혼자선 너무나 외로워 / D.D.D D.D.D 가슴만 태우는 그대여
D.D.D D.D.D 혼자선 너무나 외로워 / D.D.D D.D.D 가슴만 태우는 그대여
〈D.D.D〉는 김혜림이 1990년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곡입니다.
김혜림이 전한 ‘DDD’ 에피소드 하나,「과거 척추 쪽 증세로 재활병원을 찾았을 때 재활 선생님이 칠판에 자꾸 DDD를 적어놓아 의사에게 “자꾸 그러지 마세요. 챙피하게 정말”이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퇴행성 관절’ 의학용어가 DDD라 정말 민망했다.“고 말했습니다.
‘D.D.D’(Direct Distance Dialing) ‘장거리 자동 전화’는 우리나라 정보통신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1971년 서울과 부산만 서비스가 가능했고, 점차 지역을 넓혀가다가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이 1987년이며,〈D.D.D.〉노래가 1989년에 나와 김혜림은 깜찍하고 예쁜 미모에 발랄한 몸짓으로 D.D.D. 민간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지금은 개인 휴대전화가 보편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바로 통화를 할 수 있지만 D.D.D. ‘장거리 자동 전화’가 처음 도입된 1971년 당시에는 상대방과 연결이 될려면 꼭 전화교환원을 거쳐야 했고, 또한 시외전화 회선이 얼마 안돼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화를 걸면 평균 2시간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지역번호를 돌리거나 누르면 바로 수신자와 연결이 가능하게 된 것이 D.D.D.였던 것입니다. 구리시 지역번호는 ‘0346’이었습니다.
다음에는 11월 1일 탄신일인 남백송〈방앗간 처녀〉등 4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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