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43. 고복수 선생님의〈이원애곡〉〈휘파람〉〈장한몽〉〈풍년송〉(2025.11.24.)
다가오는 29일은〈타향살이〉〈짝사랑〉〈사막의 한〉의 고복수 선생님 탄생일입니다.
오늘은 고복수님의〈이원애곡〉〈휘파람〉〈장한몽〉〈풍년송〉등 4곡을 올리겠습니다.
–〈이원애곡〉– 금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1934년 오케레코드사)
1절. 구름따라 흐르는 몸 마음이 설워 / 낯 서른 땅 잠자리에 남 모를 눈물
2절. 분을 발라 가리나니 얼룩이 진 뺨 / 거짓 웃고 거짓 울때 내뿜는 한숨
3절. 푸른 산을 넘어가면 긴 냇가 있네 / 황막한 땅 밟아 갈 때 아득한 앞길
4절. 늦은 봄은 남쪽에서 꽃을 봤지만 / 낙엽지는 이 가을은 갈곳이 어데
〈이원애곡〉(梨園哀曲) 고복수가 1934년 부른 데뷔곡으로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원애곡 / 타향’ 앨범에 실려 있는 유랑극단(流浪劇團) 배우(俳優)들의 애환과 서글픈 신세(身世)를 노래한 곡입니다.〈타향〉(他鄕)은 필자나 애독자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계시는〈타향살이〉의 원제목입니다. 이원(梨園)의 직역은 ‘배나무 동산’이지만, 중국 당나라 때 현종이 몸소 배우의 기술을 가르치던 음악 및 연기 전문 지도기관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아악(좌방)과 속악(우방)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장악원(掌樂院)의 별칭(別稱)으로 쓰였고, 이후 연예계, 극단, 배우들의 사회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이 시기에 유랑극단은 먹고 살기 위해서 열악한 삶의 현장을 떠돌아 다니면서 처절하게 몸부림 치며 전국 또는 용정·옌지·하얼삔 등 만주 일대를 유랑했습니다. 이들 악극단의 배우와 가수, 스텦 등은 가을의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춥고 배고픔을 견디어 가면서 언젠가는 찾아 올 따스한 봄바람에 실린 봄꽃을 기다리는 희망을 품고서 살아갔습니다. 유랑극단의 애환을 노래한 노래는 1939년 백년설 데뷔곡〈유랑극단〉(박영호/전기현)과 1965년 백설희·이미자 선생님〈곡예단 아가씨〉(반야월/고봉산), 1978년 박경애〈곡예사의 첫사랑〉(정민섭/정민섭), 1986년 KBS2-TV 주제가 주현미〈내마음 별과 같이〉(남지연/박성훈), 1988년 현철〈내마음 별과 같이〉(박성훈/임택수) 등 다수가 있습니다.
☞ 작사가 금능인(金陵人 1910년〜1937년)의 본명은 승응순(昇應順). 경상북도 김천 출생으로 초대 오케레코드사 문예부장을 역임했고, 필명은 남풍월, 추엽생.〈휘파람〉〈짝사랑〉〈바다의 교향시〉〈해조곡〉〈아시나요〉등이 있으며, 작곡가 손목인(孫牧人 1913년〜1999년)의 본명은 손득렬(孫得烈). 경상남도 진주 출생으로 필명은 양상포.〈타향살이〉〈목포의 눈물〉〈항구야 잘있거라〉〈아내의 노래〉〈아빠의 청춘〉등이 있습니다. 오케레코드사는 1932년 이철이 한국인 최초로 서울 다동에 설립한 음반회사.
–〈휘파람〉– 금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1934년 오케레코드사)
(대사) 세월은 정이 없고 청춘은 말이 없어 / 지는 해 돋는 달에 마음만 상하기에 /
오늘도 왠 하루를 휘파람만 불었소.
1절. 세월은 정이 없고 청춘은 말이 없어 / 지는 해 돋는 달에 마음만 상하기에 /
오늘도 왠 하루를 휘파람만 불었소
(대사) 거문고 줄이 헐고 호둘기 때가 늦어 / 눈물진 세월 속에 가슴만 아프기에 /
오늘도 산마루에 휘파람만 불었소.
2절. 거문고 줄이 헐고 호둘기 때가 늦어 / 눈물진 세월 속에 가슴만 아프기에 /
오늘도 산마루에 휘파람만 불었소
3절. 깊은 정 원수되고 사랑이 미워지니 / 곧아츰 달빛 밤에 번민만 더하기에 /
눈물을 깨물면서 휘파람만 불었소.
〈휘파람〉고복수가 1934년에 부른 노래로 12월 이난영〈감상의 가을〉과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곡입니다. 개사「1절 ‘오날도 왼 하로를’→ ‘오늘도 왠 하루를’ 2절. ‘애타는 이 가삼을 호소할 길 없기에 거리를 돌고 돌며’→ ‘눈물진 세월 속에 가슴만 아프기에 오늘도 산마루에’ 3절 ‘삭제’ 4절을 3절로 ‘꽃 아침’→ ‘곧아츰’으로 개사해 당초 4절을 3절로 옮겨 대사를 넣어 재취입했습니다. 삭제된 3절 가사는 “기약은 속절없고 인연은 시들어서 / 떠도는 구름가에 추억만 끝없기에 언덕에 올로 앉어 휘파람만 불었소.」
–〈장한몽〉– 반야월 작사, 김부해 작곡, 고복수·황금심(1941년 빅타레코드사)
1절.(함께)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 /
악수논정 하는 것도 오날 뿐이요 / 도보 행진 산보함도 오늘뿐이다
(고) 수일이가 학교를 마칠때까지 / 어이하여 심순애야 못 참았느냐 /
남편의 부족함이 있는 연고냐 / 불연이면 금전이 탐이 나더냐
(변사)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렀게도 탐이 나더냐 / 에이! 악마! 매춘부! /
만일에 내년 이밤 내 명년 이밤 / 만일에 저 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원망하고 / 오늘같이 우는 줄이나 알아라
(황) 낭군의 부족함은 없지요 만은 / 당신을 외국 유학 시키려고 /
부모님의 말씀대로 순종 하여서 / 김중배의 가정으로 시집을 가요
(고) 순애야 반 병신 된 이수일이도 / 이 세상에 당당한 의리 남아라 /
이상적인 나의 처를 돈과 바꾸어 / 외국 유학 하려 하는 내가 아니다
(변사) 오! 수일씨,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놓아라 잡으면 찢어진다. 너의 치마는
값많은 끛동치마요. 내 쓰봉은 단돈 일전에 지나지 않는 골프 쓰봉이다. / 이 말이
끝나자 한발짝 두발짝 띄어놓기를 시작한 수일의 모습은 영영 사라지고 만것이었다.
‘장한몽’은 조중환의 장편소설로 전편은 1913년 5월 13일부터 10월 1일까지, 속편은 1915년 5월 25일부터 12월 26일까지 속편이 ‘매일신보’에 연재되었고, 1930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이수일과 심순애’입니다.
1913년 8월 혁신단에서 신파극으로 공연한 이래 영화와 대중가요에 사용되었는데, 가요〈장한몽〉은 고복수·황금심 혼인한 1941년 듀엣으로 빅타레코드사에서 발매했습니다.
총 36장으로 구성된 소설 ‘장한몽’ 줄거리,「순애의 아버지는 고아인 수일을 거둬 둘은 어릴적부터 정혼자로 자란다. 세월이 흘러 미모가 뛰어난 순애의 소문을 들은 청년부호 김중배는 남녀 학생들이 어울리는 윷놀이판을 마련해 순애를 유혹하자 순애는 흔들리고 아버지 또한 김중배의 편에 서 수일을 포기하라고 한다. 이후 순애는 김중배의 아내로, 수일은 고리대금업자의 비서로 일한다. 순애는 부를 가졌지만 남편의 방탕한 생활은 계속되고, 수일도 주인집 살인사건에 휘말려 힘든 삶을 산다. 어느날 연회장에서 우연히 해후하면서 순애는 애정을 갈구하고, 수일은 이를 배척한다. 그러나 순애가 정신병에 시달리게 되자 수일은 순애를 용서하고 두사람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산다.」
–〈풍년송〉– 김용호 작사, 문호월 작곡, 고복수·황금심(1960년 미도파레코드사)
1절. 삼사월 단비에 종자를 뿌려서 / 육칠월 햇빛에 오곡이 익었구나 /
얼씨구나 좋구나 풍년이 왔구나 풍년이 왔네 /
앞집의 참봉님은 지게를 지고요 / 뒷집의 아가씨는 낫들고 나간다 /
얼씨구 좋구나 풍년이 왔네 /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어 / 풍년이 왔네
2절. 앞강의 뜬배는 돈실러 가는배 / 뒷강의 뜬배는 돈싣고 오는 배 /
얼씨구나 좋구나 풍년이 왔구나 풍년이 왔네 / 앞집의 막동이는 장가를 든다지요 /
뒷집의 순이는 시집을 간데지 / 얼씨구 좋구나 풍년이 왔네 /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 얼씨구 좋구나 풍년이 왔네 / 풍년이 왔네
〈풍년송〉1938년 1월 오케레코드사에서 황금자(당시 황금심 예명)〈지는 석양 어이하리〉와 함께 발매한 고복수·이은파 듀엣곡으로 남·여, 남·여 한소절씩 부르던 노래를 1960년 노랫말을 개사하고, 편곡을 다시하여〈새 날의 풍년〉(豊年)이라는 제목으로 고복수·황금심 부부가 듀엣으로 불러 미도파레코드사에서 발매한 ‘고복수 걸작집, 타향사리’ 앨범에 실린 곡입니다. 음반엔〈타향사리〉〈휘파람〉〈꿈길 천리〉〈풍년송〉이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분 참 다정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음엔 12월 1일 탄생일인 윤일로님〈추억의 영도다리〉등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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