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80. 정향〈방랑일기〉〈연옥아 울지마라〉〈원통해서 못 살겠네〉(2026.08.10.)
다가오는 15일은 제 81주년 ‘광복절’(光復節)입니다. 우리 모두 다 태극기를 게양합시다.
오늘은 가수가 부업인 정향(1928년〜2019년)의〈방랑일기〉〈도라오라 춘희〉〈연옥아 울지마라〉〈원통해서 못 살겠네〉〈포구의 인사〉등 5곡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정향(鄭響)의 본명은 정천석. 1928년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나 1940년 형님과 함께 만주로 이주해 살다 해방 후 1946년 귀국해 친척이 살던 부산 광복동에서 ‘명성시계점’을 운영하면서 기타와 노래를 배워 각종 콩쿨대회에 참가해 입상하곤 했습니다. 1951년 전쟁 때 일본 고베로 가서 시계점을 운영하다가 작곡가 김용대와 가수 고운봉을 만나 극장쇼 등에서〈신라의 달밤〉〈가거라 삼팔선〉등 노래를 부르다가 오케태평레코드사 김태운 사장에게 음반 취입 제의를 받아 작곡가 박시춘 곡〈이국의 밤〉〈울고 10년 울어 10년〉을 1953년〈가거라 삼팔선〉〈신라의 달밤〉을 발매했습니다.
예명 ‘정향’은 가수 고운봉과 김용대, 그리고 김태운 사장이 모여서 “가객으로 기운을 살려가라는 뜻” 으로 그의 성 ‘정’(鄭)에 ‘소리향’(響)을 붙혀 만들었다 합니다. 1954년 공연차 일본을 방문한 가수 남인수와 현인은 소문을 듣고 정향을 찾아가 즉석에서 테스트를 했는데,〈가거라 삼팔선〉〈신라의 달밤〉을 불러 인정을 받고서 후일을 기약했다고도 합니다.
1955년 일본에서 부산 부평동으로 귀국하였고, 그가 귀국했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서 작사가 천봉과 작곡가 한복남이 찾아와 도미도레코드사와 계약금 3만환으로 전속가수계약을 맺고 1956년〈방랑일기〉〈도라오라 춘희〉로 첫 음반을 취입하면서 정식으로 가수 데뷔를 하였습니다.
1957년〈원통해서 못 살겠네〉를 밮표해서 대중들에게 더욱 가수로서 명성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가수 정향의 음색은 여성과 같이 결이 곱고 아름다우며 맑아서 가요황제 남인수와 비슷한 경향이 있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부른 곡은 50곡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말 중 하나가 “거리에서 담배꽁초를 주워서 피우는 사람은 거지 아니면 가수다.”라는 말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대부분 가수들이 서울로 올라갔지만 정향은 부인과 자식 6명, 장인·장모·조카·식모 등 13명의 식구들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 부산에 남아 ‘정일사’라는 시계점을 운영하였다 합니다.
–〈방랑일기〉–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정향(1956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창살에 단풍잎이 달빛 타고 떨어져 / 향수에 우는 몸이 키타를 안고 /
그 사랑도 그 행복도 미련 없이 버리고 / 울랴고 내가 왔나 낯 서른 타향
2절. 바람이 부는 대로 동서남북 떠돌아 / 물결이 치는 대로 흐르는 신세 /
그 항구도 그 인정도 혼자 사는 청춘에 / 서러운 방랑일기 적어나 보리
3절. 언제나 고향 찾아 어머님을 찾아서 / 비단옷 몸에 감고 돌아 가려나 /
그 날짜도 그 희망도 흘러가는 세월에 / 사나이 우는 마음 누가 알소냐
〈방랑일기〉정향이 1956년에 부른 데뷔곡으로 도미도레코드사에서 황금심의〈동백꽃 피는 섬〉과 함께 발매된 스플릿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또한 1962년 동(同)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정향 가요 힛트 앨범 제 1집, 방랑일기’ 앨범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음반 SIDE 1면.〈방랑일기〉〈고향가는 완행열차〉〈돌아오라 춘희〉〈고향길 천리〉SIDE 2면.〈연옥아 울지마라〉〈원한의 북행열차〉〈나 여기왔네〉〈항구의 부르스〉등 8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방랑일기〉는 전쟁이 끝나고 몇년이 지나지 않은 시기라 전쟁통에 고향을 떠나 타향땅에서 지내는 국민들이 많았고, 가난한 곳에서 춥고 배고픈 생활을 하기 보다는 따뜻하고 국민들이 잘 사는 외국으로 출국해 살겠다면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발표와 함께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노래입니다.
–〈도라오라 춘희〉– 천봉 작사, 이인권 작곡, 정향(1956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아느냐 모르느냐 그리운 사람아 / 찾아서 헤매인다 발길 닿는대로
이 노래 들으며는 돌아오라 춘희 춘희 춘희 / 애타는 이 가슴에 불을 밝혀라
2절. 아느냐 모르느냐 그리운 사람아 / 진정코 너와 나는 헤져선 못 살아
새 출발 맹세하자 돌아오라 춘희 춘희 춘희 / 고달픈 이 세상에 꽃을 피우자
〈도라오라 춘희〉정향이 1956년에 부른 노래로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전화통신(남백송·심연옥) / 도라오라 춘희’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으로 데뷔곡 중 한곡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헤어진 연인 춘희(春姬)를 애타게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입니다.
–〈연옥아 울지마라〉– 강탁수 작사, 한복남 작곡, 정향(1957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연옥아 울지마라 울지마라 연옥아 / 모질고 눈이 어둔 황금이 원수지
갈 바엔 아주 가나 잊을 바엔 미련없이 / 사나이 가는 길을 변함인들 있을소냐
2절. 연옥아 울지마라 울지마라 연옥아 / 청춘이 무엇이며 인생은 무어냐
맹서코 가는 너를 붙잡은들 어이하리 / 사나이 두 가슴에 한을 주고 흘어가오
〈연옥아 울지마라〉정향이 1957년에 부른 노래로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저무는 국제시장(황정자) / 연옥아 울지마라’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그리고 1962년 동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정향 가요 힛트 앨범 제1집, 방랑일기’ 앨범 SIDE 2면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입니다. 마치 ‘이수일과 심순애’를 듣는 것 같은〈연옥아 울지마라〉가 나오자 전국의 다방 등에서는 ‘연옥’(蓮玉는)으로 불리우는 여성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원통해서 못 살겠네〉– 월견초 작사, 백영호 작곡, 정향(1957년 빅토리레코드사)
1절. 원통해서 못 살겠네 원통해서 못 살겠네 / 믿지 못할 그 말씀에 청춘을
빼앗기고 / 하지 못할 그 맹세에 사랑도 짓밟아 놓고 / 생각을 말아라 그 인사라니 /
원통해서 내 못 살겠네
2절. 울어봐도 못 살겠네 땅을쳐도 못 살겠네 / 주지 못할 그 사랑에 처녀란
이름 잃고 / 자랑 삼던 제비댕기 물들여 못쓰게 하고 / 마지막 길이다 이별이라니 /
억울해서 내 못 살겠네
〈원통해서 못살겠네〉정향이 1957년 부른 노래로 빅토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원통해서 못 살겠네 / 달나라 별나라(황금심)’ SP 음반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노래에 실린 대사 “믿은 내가 잘못이지 속은 내가 바보지 / 사랑 대신 그 인산가 작별이든가 / 믿은 것도 사랑이고 속은 것도 사랑이면 울어서야 될 말인가 / 하지만 원통해서 못살겠네..”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된 곡으로 소문이 났지만 정향은 아마도 노래를 내고도 활동을 안하니까 생긴 이야기 같은데, 본인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1951년에 한복남이 부산 아미동에 ‘도미도레코드사’를 차리자 임정수는 1953년 남부민동에 ‘미도파레코드사’를 차리는데 1964년 바뀐 ‘지구레코드사’ 전신입니다. 임정수 사장이 정향을 전속가수로 영입할려고 탐을 내자 한복남과 임정수는 ‘초원다방’에서 크게 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포구의 인사〉– 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 정향(1956년 도미도레코드사)
1절. 포구의 인사란 우는 게 인사려냐 / 죽변만 떠나가는 팔십마일 물길에
비 젖는 뱃머리야 비 젖는 뱃머리야 / 어데로 가려느냐 아아아 아아아아
2절. 학 없는 학포란 어이한 곡절이냐 / 그리운 그 사람을 학에다 비겼는가
비 젖는 뱃머리야 비 젖는 뱃머리야 / 어데로 가려느냐 아아아 아아아아
(3절. 해협을 흘러가는 열사흘 달빛 속에 / 황소를 실어 가는 울릉도 아득하다
비 젖는 뱃머리야 비 젖는 뱃머리야 / 어데로 가려느냐 아아아 아아아아)
〈포구의 인사〉정향이 부른 노래로 원창자는 1941년 10월 오케레코드사를 통해 취입한 가요황제 남인수입니다. 죽변만(竹邊灣)은 경상남도 울진군에 있는 만으로서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 또는 ‘대숲 끄트머리 마을’이라 죽빈이라 했다가 죽변으로 바뀌었습니다. 노랫말에서 유추해 보면은 그 당시 죽변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정기 배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울릉도 명물인 ‘약소’는 당시 육지의 한우를 울릉도로 배를 이용해 운송하여 갔었던 것 같습니다. 학포(鶴浦)는 진해 영길만에 있는 포구로 학개마을이라고 합니다.
다음엔 우리나라 가수 중 처음으로 예명을 사용한 ‘신카나리아’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기사작성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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