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진의 건강편지 21
■ 사주팔자와 관상 그리고 건강 ■
요즘 “꼴”이란 만화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허영만이라는 작가가 유명한 관상가에게 공부하고 배운 내용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그려진 만화이지요.
초판만 무려 44세 인쇄를 한 책을 보고 있으니 지금은 훨씬 더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현대화된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런 전통적인 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볼 때 신비스러운 것은 항상 인간에게 매력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건강하고 유복한 부모를 만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복중에 으뜸인 복을 타고난 친구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그런 행운의 기회를 잡았을까요?
마음이 기운을 만들고 그러한 기운이 형상(꼴)을 만든다는 내용이 한의약이 말하는 경락학설과 매우 유관한 설명을 하고 있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변하면 어떤 기운(감정)이 생기고 그러한 반복된 기운이 경락을 변화시키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즉, 현재의 얼굴은 과거 마음의 변화상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마음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간다면 미래의 얼굴 또한 좋아지리라 봅니다.
‘한방 성형’의 골간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마음의 변화로 인한 경락의 조체 내지는 장애를 풀어주는 침술을 사용하여 경락을 잡아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요인들의 제거 내지는 성찰이란 생각이 듭니다.
자연이 빚은 얼굴의 모습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또한 변하고 인간이 빚은 얼굴의 모습 또한 변하게 마련입니다. 얼굴 속에 비친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관상의 요체이며 형상만을 보고 관상에 대한 이야기는 하수중의 하수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공자님도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 것처럼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사주팔자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렸을 때 일이 생각이 나는군요. 하나님을 믿으라는 주위의 성화에 발끈하면서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 나를 믿어야지”하는 치기어린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나와 하나님을 독립적으로 개별적으로 바라본다면 그 말이 맞지만 내안에 하나남이 있다면 나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거겠지요.
년,월,일,시가 각각 우주의 특정기운이 있다고 보는 우주관에서 파생된 학문으로 대단히 정교하고 논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주는 해석학문이다 라는 말에 동의를 하는 편입니다. 해석을 하기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유관된 학문의 도움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고 어느 정도 경험을 해봤을 때 마치 인간의 여정이 선택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선위를 발견하고 걷고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한 선을 걷기위한 인간의 판단이 절대적이었다고 본적도 있었지만 근래에는 인간의 판단도 하나의 1/n이지 않나 생각되기도 하구요. 어째든 인간의 부귀빈천이 타고났다는 측면에선 왠지 서운하고 무기력하고 불평등하다고 생각되겠지만 이 부귀빈천 또한 인간의 관점이 아닌 우주의 관점에서 “새옹지마”라는 측면으로 이해한다면 한결 가볍고 희망이 생기리라 봅니다.
건강도 또한 타고난 건강체이어야 건강하지만 이 또한 감사와 고마움의 대상이지 건강을 훼손할 여유와 시간을 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원망과 분노의 시간이 주어진 게 아니라 적선적덕을 통한 인내와 고통의 시간으로 가져간다면 미력하나마 건강을 이룰 수 있으며 후대에는 좋은 기운을 전달하여 다시 동적 평형을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에 바람이나 화가 없는 동요가 없는 삶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길이요, 질병이 발생한다면 두려움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내안의 나를 살피고 사랑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음과 질병은 하나이지 개별적이거나 독립적으로 바라보지 말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