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조는 실존인물, 우리 국조는 신화?
수년 전 중국 정부는 후난성 주저우시에 있는 염제릉에서 난데없이 ‘시조공정(始祖工程)’을 벌렸다. “염제의 정신을 널리 펴서 중화민족의 정신을 단결시키자.” “염황(炎帝, 黃帝)의 자손들은 시조를 잊지 않는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우리 시조를 높이 받드는 길이 우리 중화를 사랑하는 길” “염제릉이 있는 곳은 중화민족의 성지이며 중화 민족정신의 고향” “우리는 염황지손(炎黃之孫)이다”이라며 자신들의 시조를 추켜세웠다.
중국의 역사는 삼황오제(三皇五帝)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5제부터 오제본기로 적어 역사로 인정했고, 삼황은 선사시대의 신화의 인물이라고 기술했다. 삼황(三皇)이란 태호복희, 여와, 염제신농을 이르는 말이며, 오제(五帝)는 황제헌원,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순임금을 말한다.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워 국민들에게 대단합을 호소하고,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자부심을 국민들이 가지도록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러한 ‘시조공정’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삼황오제에게 제사를 올리면서 중화민족주의의 깃발아래 15억 인구의 대단합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중화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중이다.
미천했던 한 중국의 역사
그러나 중국의 역사는 원래 미약했다. 굳이 족보를 따져 본다면 삼황에서 으뜸가는 태호복희는 우리의 배달국 5대 태우의 환웅의 아들이며, 여와는 복희와 남매인 동시에 부부이며, 염제신농은 8대 안부련 환웅이 파견한 지방행정관 소전의 아들이다. 5제의 황제헌원은 소전의 또 다른 후손이며,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신하였던 유호의 아들이다.
이는 <환단고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서도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즉 중국의 3황 5제가 전부가 배달동이족이었다. 5제 이후 하·상·주나라의 역사 역시 배달의 후예인 이족(夷族)의 역사였으며, 심지어는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시황도 동이족이라고 밝혀졌다.
한족 최초의 나라가 漢나라이며, 중국의 통일왕국 중 宋나라와 明나라만이 한족의 나라일 뿐이다. 중국의 상징인 한나라도 전한·후한으로 나누어지며, 송나라도 남송·북송으로 나누어져 300년 이상 존재했던 나라가 없는 실정이다. (진시황, 수나라, 당나라는 한족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국조를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 조상인 치우천황도 자기네 조상이라고 하고 있다. 중국 사서에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와 “천자의 호칭은 동이족에서 시작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불패의 전쟁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그런 위대한 조상을 자기네 조상으로 가져가더니 이제는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지방정권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에게 치우천황은 그림책과 축구국가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단군이 신화로 되어있다 보니 그 이전의 치우천왕이야 오죽 하겠는가? 아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하여 정부가 만든 기구인 동북아역사재단의 홈피에 있는 글로서 우리 국조인 단군신화에 관한 내용이다.
(인용)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신화로서 (중략) 단군조선을 신석기시대, 예맥조선(기자조선)을 청동기시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략) 환웅이 무리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부르고는 (중략) 이 때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가 같은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신령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가 이것을 먹되 햇볕을 100일 동안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먹으면서 스무 하루 동안 금기하였는데,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된 웅녀가 이번엔 신단수 아래에서 결혼할 상대를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고조선의 건국자인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즉위하였는데, 백악산 아사달 등에 도읍하였다가, 나라를 다스린 지 1,500년 향년 1,908세에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인용 끝)
위에서 보다시피 우리 사학계는 국조 단군을 신화로 보고 있어 우리 민족은 생물학적으로 미련한 곰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인간이 1,908세까지 살았다는 의학적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단군신화 다음에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이민족에 의한 식민지배의 역사가 교과서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이는 “조선민족의 역사는 이민족 식민지배의 역사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의 조선이 이민족인 우리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일제가 저지른 조작된 역사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론들은 <환단고기>가 발견됨으로서 모두 조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단군조선은 기원전 2333년 건국되어 47분의 단군에 의해 다스려졌으며, 그 이전에 18분의 환웅이 다스린 1,565년의 역사를 가진 배달국과 환국이 더 있었다. 게다가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나이가 1,908세라고 말한 근거도 다 밝혀졌다.
천손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을 일개 섬나라가 식민지배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 스스로 우매한 민족임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 일본은 우리의 상고사부터 조작하게 된다. 우선 조선에 있던 책을 전부 수거해 20만권이 넘는 사서를 불태웠으며, 중요한 사료는 일본으로 다 가져가 버린다. 고대 사료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을 남겨 놓았고, 광개토태왕 비문을 훼손하고는 왜(일본)가 200년 동안 임나(가야)지방을 경영했다는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한다.
일제가 <삼국유사>를 남겨놓은 이유는 위 단군신화의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삼국유사에서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군신화를 교묘히 이용해, 우리 민족을 미련한 곰의 자손으로 만들고 찬란했던 조선의 역사를 이민족에 의한 식민지배의 역사로 위조한다.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 세뇌교육용으로 <조선사 35권>이라는 위조역사서를 편찬해 조선인들에게 가르친다. 이렇게 조작된 단군신화와 왜곡된 역사를 우리는 광복 70주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로 알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국사교과서를 만들어 교육시키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실상은 어떠한가?
우리 스스로 국조를 신화화하고는 위대하고 찬란했던 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광활했던 대륙의 역사를 좁은 한반도 가두리 양식장에 가두는 반도사관으로 작성된 현행 국사는 민족의 자부심을 전혀 느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국조 단군상의 목이 잘리기도 했다.
현재 우리 국사는 일제가 조작한 <조선사 35권>을 바이블로 하여 철저한 반도사관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 교과서의 내용이 조금씩 개정되고는 있으나 아직도 <조선사 35권>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역사는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광복을 못한 실정이다.
<한국은 국조 단군의 목을 잘랐다>
이제부터라도 지금까지 잘못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밝힌다면 우리의 민족혼은 회복될 수 있을 것이고, 동북공정이 허구라는 것을 만천하에 밝힐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게 잃어버린 땅을 다시 되찾아 올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는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민족의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겨레여! 이러다간 중국과 일본에게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One Comment
pigbay
좋은 내용입니다. 추천!
마지막 사진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