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제의 30만 대군을 전멸시킨 고구려
한국(고구려)이 중국(수나라)의 일부(지방정권)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중·일·러 정치지도자의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5%가 시진핑 중국주석을 첫째로 꼽았으며, 이어 2위는 푸틴 러시아대통령의 13%, 다음이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9%, 아베 일본총리의 4%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반도 평화에 어느 주변국이 중요하느냐는 질문에는 미국이 55%로 가장 많았으며, 중국이 36%인 반면에 일본과 러시아는 1%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또한 시진핑 중국주석의 비호감도는 64%로 가장 적었는데, 2013년의 50%에 비해 비호감도가 증가한 이유는 시진핑의 최근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는 망언과 사드 배치에 대한 경제보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의 비호감도가 67%, 트럼프 대통령은 85%,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 재협상 요구와 소녀상 등에 따른 반일 정서에 기인해 90%로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실제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다름 아닌 중국을 꼽고 싶다. 특히 시진핑의 최근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는 망언과 한국의 대통령특사를 일부러 하대(下待)하는 것을 보이는 이유는 북한에서 정변이 발생하면 무력으로 개입해 식민지 한사군(漢四郡)으로 만들고 한국을 조선왕조처럼 중국(명나라)의 속국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역사에 대해 무지한 시진핑이 역사공부를 새로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은 분열과 혼란의 오호십육국시대를 거쳐 남북조시대로 정리된다. 남쪽 동진(東晉)은 송(宋)–> 제(濟)–> 양(梁)–> 진(陳)으로 전해지고, 북쪽 오호십육국은 북위(北魏)로 병합되었다가 서위와 동위로 나눠지고, 동위는 북제(北齊)로 서위는 후주(後周)로 바꿔진다. 후주가 북제를 병합했다가 수(隋)로 전해지고, 수가 남조의 진을 병합함으로써 비로소 중국이 약 280년 만에 통일되는 것이다.
백제에게 참패한 화북의 최강자 북위
439년에 화북을 통일한 최강자 북위의 대군이 백제에게 두 차례나 참패해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동성왕 10년(488년) 위(=北魏)가 군사를 보내 우리(백제)를 치다가 우리에게 패했다.”라는 기록과, <자치통감> “영명 6년(488), 북위가 병력을 보내 백제를 공격했으나 백제에게 패했다.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요서·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永明六年魏遣兵擊百濟晉世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也)”라는 기록은 같은 내용이다.
위 두 기록으로는 어느 정도 규모의 병력이 어떻게 참패했는지를 상세히 알 수는 없으나 북위가 488년의 대패를 설욕하기 위해 2년 후 다시 백제로 쳐들어가는 기록이 <남제서>에 남아있다. “이 해(490)에 북위가 또 다시 기병(騎兵) 수십만 명을 일으켜 백제를 공격해 그 경계로 들어가니, 모대(동성대왕)가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천나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위나라 군대를 습격해 크게 물리쳤다.”
동성대왕이 495년에 남제로 보낸 표문에 “지난 경오년(490)에 험윤(북위)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이 쳐들어왔으나, 사법명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반격하여 이를 토벌했는데 밤에 번개같이 들이치고 도망가는 것을 따라가 베니 시체가 들판을 묽게 물들였다(僵尸丹野)”라고 <남제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두 차례나 백제에게 수십만의 기병을 잃은 북위는 이후 남북조 최강자에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결국 535년에 망하게 된다.
고구리에게 참패한 중국 챔피언 수문제
섬서성 화음(華陰) 출신인 양견(楊堅)의 아버지 양충은 서위에서 주국대장군을 지냈고 북주에서는 수국공(隋國公)에 봉해진 인물이다. 양충이 죽자 아들 양견이 그 작위를 이어받았고, 양견은 딸이 태후가 되자 북주의 정권을 장악하게 되어 북주는 자연스럽게 수나라로 변하게 된다. 이어 589년 수나라 군대가 남조인 진(陳)왕 숙보(叔寶)를 생포함으로써 드디어 약 280년 만에 중국이 통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중국을 통일시킨 위대한 인물인 수문제 양견은 한족(漢族)이라고 하고 있으나, 실제 그는 우문(宇文)선비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나라연(那羅延)이고 원래 성씨는 보육여(普六茹)이었는데, 양견의 부친 양충이 선비족의 한족화 정책에 의해 중국 성인 양씨를 하사받은 것이라는 설명있다.
여하튼 중국통일을 이뤄 기고만장해진 수문제는 高句麗마저 없애려고 침공한다. <삼국사기 고구려국본기> 영양왕조에 “9년(598) 왕이 말갈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遼西)를 침공했으나, 영주총관 위충이 이를 물리쳤다. 수나라 문제가 이 소식을 듣고는 크게 노해 (4째 아들) 한왕 양과 왕세적 등을 모두 원수로 임명해 수륙군 30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했다.
여름 6월, 한왕 양의 군대가 임유관(臨渝關)을 나왔을 때 심한 장마로 인해 군량미 수송이 이어지지 못해 군영에 식량이 떨어지고 또한 전염병까지 돌았다. 주라후의 수군은 동래(東萊)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성으로 오다가 풍랑을 만나 선박 대부분이 깨지고 침몰되었다. 가을 9월에 수나라 군사들이 돌아갔는데, 80~90%가 죽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중국 최강자로 통일을 이룬 수문제가 보낸 30만 대군이 의기양양하게 고구리를 공격했다가 식량이 부족하고 전염병 때문에 80~90%의 대부분 병력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 특유의 춘추필법이 아닐 수 없다. 30만 대군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이유는 살수대첩과 비슷한 전투에서 고구려에게 수나라의 30만 수륙양군이 거의 전멸을 당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시진핑은 한국(고구려)은 중국(수나라)의 일부(지방정권)라고 했는데 이는 틀린 말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중국학자들은 수나라가 서진 이후 갈기갈기 분열되었던 중국을 통일했다고 하는데, 당시 중국 통일을 이룬 수나라와 동시대에 고구려/백제/신라가 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은 우리 삼국이 중국이 아니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동북공정의 의미와 똑같은 시진핑의 말은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는 허구 그 자체임이 밝혀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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