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아파트)을 어떻게 볼 것인가 ?
부동산 폭등이 끝이 없다. 수요억제를 골자로 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처참하게 깨졌다. 언필칭, 진보정권이라는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는 왜 맥없이 지고 말았는지를 한번 따져보고자 한다.
이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사회적 의제이고 국민들의 실생활에 밀접한 정책이다 보니 한번 공부도 할 겸 도시재생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10년간 뼈 빠지게 일을 했는데 10년 동안 일하지 않고 집을 가진 사람이 재산이 더 늘어났다면 그 사회는 정상도 아니 공정한 사회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를 도출했다면 그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을 요즘만큼 실감한 적도 없다.
하긴, 말의 성찬이 되어버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깃발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보유(재산세. 종부세)세를 늘리고 거래세(양도세)를 줄이는 수요억제 정책이 과연 한국사회에 맞는지 따져보고자 한다.
한마디로, 돈 없으면 집 가지지 말란 말이다. 그리고 집 많은 사람은 바겐세일을 해줄 태니 “빨리 파라라” 라는 말이기도 하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집사지 말고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길 바란다. 필자가 하고픈 말이다. 필자는 요즘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집도 있고 더 이상 교육이나 직장에 구애받지 않는 나이에 이르다보니 생각이 그 지점에 닿아 있다.
집은 의식주중의 하나이다.
가장 기본적인 삶의 일부분이다. 먹고 입고 자는 곳이 일정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뭘 먹고 뭘 입고 어디서 자는 걸까 ?
그리고 그것의 기본 동인이 가정인가 개인인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대부분은 가정을 통하여 먹고 자고 입는다. 맛난 것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욕망이다. 욕망이 실현되면 별 거 아니거나 더 큰 욕망을 향해 달려가지만 욕망 실현의 단계 이전에는 누구나 기본 욕구에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중 한국사회는 유교적인 영향 때문에 교육에 대한 열의가 보통을 넘는다. 신분이전의 정당한 방법으로 교육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다. 주거 문제가 교육과 일자리와 매우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국제 경쟁력을 유지한 것도 교육과 일자리 때문이며 집이라 읽고 교육과 일자리로 해석하는 방향을 가질 때 부동산 정책은 올바른 방향을 잡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정책 수립을 단순이 나쁜 사람을 핀셋으로 거세한다는 방침이나 가진 자들의 리버럴한 수요억제정책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천박한 정책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배우고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싶지 않은가 ?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기본 동인 이외에 좋은 직장,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은 지속되고 유지될 때 건강한 사회가 유지된다 하겠다.
부동산 정책은 교육과 일자리와 연동된다. 교육 장소 그리고 직장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올라간다. 어차피 경쟁교육을 피할 수 없다면 지역 인재를 배출하는 사학의 육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방분권정책으로 차별화 되고 특성화하는 일자리를 사활을 걸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누가 뭐래도 사람이다. 우수한 두뇌와 부지런하고 성실한 몸을 자기고 있다 하겠다.
가정을 이루지 않는 요즘 젊은 세대의 고뇌에 찬 결단을 정책 당국자는 좀 더 큰 위기라는 마을을 가지고 대처해야만 한다. 정치와 국민이 서로 신뢰를 가지고 난국을 극복해나가야 하는데 서로 등을 맞댄 형국이니 사회적 대전환만이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순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외에 도로건설과 교통수단의 발달이 역설적으로 부동산 수요를 배가시키고 집중시키고 있다는 지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물류의 신속한 이동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도로 건설이 역설적으로 집값 폭등을 밀고 있는 형국이니 아차산에 있는 나비의 날개 짓이 동해 바다의 큰 파도를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교육과 일자리 그리고 교통망이라는 3대 축에 대한 병행적인 검토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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