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부동산이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어릴 때 자주 부르던 동요이다. 요즘은 동요보다 트로트 경연을 자주 볼 수 있으니 왠지 씁쓸하다. 저희 세대만 해도 아니 요즘 세대들도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려온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일하러, 공부하러 서울로 상경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젊은이들이 모이고 일자리가 모이는 수도권은 리카르도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이론을 빌리지 않아도 땅값과 부동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수요가 늘고 그중 더 좋은 수요처가 늘어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자 자유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누구나 더 살기 좋고 쾌적하며 동시에 재산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수요가 느는 건 자명하다. 수학에서 표준본포곡선이 있다. 부동산 시장에 표준분포곡선을 도입을 하면 집을 많이 가지길 원하는 사람과 집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양극단에 존재하며 대다수는 자기 집을 가지길 원하며 더 좋은 집을 가지길 원한다. 이러한 표준분포곡선이 균형과 안전을 유지한다면 부동산 정책은 성공한 것이나 양 극단이 늘어나서 집을 많이 소유하거나 집을 장만한 기회조차 같지 못하는 경우가 커진다면 부동산 정책은 제고되어야 마땅하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있단다. 투자처를 찾지 못해 유동자금으로 남아있단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천문학적으로 풀린 자금이 강제적 병합을 방어하기 위한 자금으로 혹은 주주에게 더 높은 수익을 주기 위한 투자 자금으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다. 이 자금은 전 세계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작고 약한 나라에서는 투자라는 명목으로, 국내에서는 부동산 시장을 통하여 안전한 수익을 꾀하고자 혈안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선한 의지의 부동산 규제 정책과 맞물리면서 부동산은 연착륙적인 오름이 아니라 폭발적인 오름으로 나타나고 말았다.
더욱이 더 큰 문제는 젊은 청년에게는 주거용 사다리를 걷어차는 형국으로 나타나 저 출산을 더욱 부채질하고 미래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빼앗아가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미래의 성장 동력을 떨어트리는 아주 불길한 경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수요 공급 그리고 규제라는 도식으로 설명하기엔 부동산의 난맥상을 풀기 어렵다. 더욱이 앞 다투어 주택문제 해결을 빙자한 그린밸트훼손은 도시민들의 욕망을 자극함과 동시에 더욱 팽창하고 있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기도 하다. 지자체장도 지방세수의 확보와 난개발로 얻어지는 부가소득에 눈이 멀어 미래세대에게 크나큰 부담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어차피 수도권은 팽창한다. 구리시는 서울에 바로 붙어있고 서울에서 밀려난 도시민의 유입으로 구리도 또한 팽창하고 부동산 수요도 늘어나는 지역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그린벨트의 문제만이 아닌 1종과 2종 등의 도시 정비 사업에 대한 검토 그리고 재개발과 재건축에 대한 통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구리시는 근 20년 동안 무슨 무슨 추진 사업 예를 들어 월드 디자인센터나 한강신도시 사업 등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선심성 정책으로 시민혈세의 낭비 그리고 정치에 줄 세우는 분열주의로 구리시의 역량은 소모되고 마모되어 타 도시보다 퇴보하고 쇠퇴하고 말았다.
이는 구리의 책임 있는 정치세력들의 무책임과 철학 없고 가치가 없는 선심성 정책의 남발에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도 도심을 활보하며 자기 사업에 대한 정당성만 주장할 뿐 구리시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없는 그들만의 각축장이 되어 버렸다. 시민들도 구리시의 주인임을 깨닫고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바라보며 공동체의 이익에 발마추어 구리시가 발전하는 길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유력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에 눈이 간다. 1호선 지하철을 지하화하자고 주장한다. 필자 또한 경의 중앙선의 지하화를 주장한지 오래다. 비록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미약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정체모를 추진사업에 몽매이지 말고 구리 시내를 관통하는 경의 중앙선이 지하로 들어가고 그 위에 수준 높은 재생사업으로 다시 태어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새해에는 정치인이나 책임 있는 자들의 생각대로 살지 말고 주체적으로 마음껏 상상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멋진 구리시민이 되어보자는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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