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해야 한다.”
20세기 후반 !
하나의 큰 사건을 이야기 하자면 소비에트연방의 몰락을 둘 수 있습니다. 레닌의 지도아래 단방에 소련을 절대 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하고 세계 혁명의 진원지로 일하는 사람들의 로망인 나라 !
우리 눈을 의심케 하는 “레닌 동상이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한 세계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은 참담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상실의 시대로 대변되는 속칭 “쿨하다” 라는 사조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본디 쿨한 것이 그게 아닌데 어느덧 감정의 찌꺼기를 배제한 삶이 젊은이의 가슴에 파고들어 무채색의 얼굴과 일정한 관계 속에 계약과 협상이 쿨함의 정형화된 모습으로 남게 되었지요.
원래 심장은 뜨거워야 하고 머리는 차가워야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심장과 머리의 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멀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뜨거워야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 에너지가 삶의 원동력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가 쉬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차가운 머리가 뒷받침되어야만 합니다.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관계라고나 할까요?
종종 뜨거움은 생기발랄한 모습과 화병으로 나타납니다. 젊은이의 생기발랄함과 단전의 기운(자궁)의 상실로 심장이 홀로 뜨거워지는 상태는 냉정하게 다른 모습이지요.
사람은 본디 항온 동물로서 일정한 온도(따뜻함)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열역학의 법칙대로 주위 온도가 차가워져 열이 방출되어(빼앗겨) 차가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도는 심장의 순환으로 우리는 다시 따뜻해져야만 합니다. 다시 돌아 따뜻해졌지만 차가운 주위 온도로 다시 열이 방출될 수도 있지만
정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운동하는 정중동의 본성에 순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알싸하고 설레이는 기운은 무형의 따뜻한 에너지로서 심장의 순환을 드높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본성인데 사랑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왜 일까요? 어느 유명 연예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감정을 등가 교환하기가 불편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교환이 가능한 화폐로 치환하는 사회가 우리네 삶을 쿨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봅니다.
본성은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도 않습니다.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철들지 않음을 전 사랑합니다.
철들었다 함은 이미 열정은 상실되고 늙어감이지요.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럽지만
내가 태어난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고픈 이유라고 강변한 황석영님의 “개밥바라기별”의 글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어른들은 우리가 정말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철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본인이 자기가 정말 잘하는 것을 모른다면 혹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면 바람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 홀씨나
어디를 행하는지 둥둥 떠내려가는 나뭇잎과 뭐가 다르겠는가?! “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