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我田引水)를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
김기복 강원백년포럼 회장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정치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유권자들 앞에 허리를 숙이며 간절한 한 표를 호소했다.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 “겸손하게 섬기겠습니다”라는 말들이 그들의 입에서 녹음테이프 틀어 놓은 듯 반복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한 달 남짓, 그 굽신거림은 온데간데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지금 자기 진영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진흙탕 싸움이다. 그야말로 자기 몫을 챙기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를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안중에는 국민도 민생도 없어 보인다. 지역과 나라의 백 년 대계를 고민하며 활동해 온 시민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작금의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모든 국민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런 꼴 보려고 그 바쁜 시간 내어 투표장에 갔었던가. 소중한 한 표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당권 경쟁의 늪에 빠졌다. 오는 8월 1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청래 전 대표와 김민석 전 국무총리, 송영길 의원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 그 양상이 볼썽사납다. 김 전 총리는 정 전 대표를 향해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굳이 두 번 할 필요는 없다”고 직격했고, 송 의원은 정 전 대표의 ‘노무현 적통’ 자격을 문제 삼아 장례식 불참을 거론했다가 이를 부인한 정 전 대표가 강하게 반박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급기야 김 전 총리는 김대중부터 노무현, 문재인을 거쳐 이재명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정통성 있는 적자인지를 다투는 족보 싸움이다. 고민정 의원은 이러한 계파 갈등과 낙인찍기 정치를 비판하며 당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야당인 국민의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장동혁 대표를 향한 비당권파의 2선 후퇴 압박이 거세지고, 일부 지역에서는 지도부의 방문을 보이콧하는 극심한 내홍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비상대책위 전환론, 한동훈 복귀론, 안철수·나경원·원희룡 등 중도확장론이 뒤엉키면서 당의 진로는 안갯속이다. 특히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한동훈 전 대표가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며 야권 재편의 구심점을 노리고 있다는 관측까지 겹치며, 당은 통합이 아닌 분열의 원심력에 휘둘리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착잡하다 못해 냉소적이다. 선거 때마다 낮은 자세로 유권자 앞에 섰던 이들이, 표를 얻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권력 다툼에 몰두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목격한 국민들은 이제 정치적 약속이라는 말 자체를 믿지 않게 됐다. “선거는 선거고 밥그릇은 밥그릇”이라는 자조 섞인 냉소가 여론 곳곳에서 확인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내홍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당권 경쟁에 매몰된 정치권이 정작 물가, 일자리, 부동산, 저출생 같은 민생 현안에 쏟아야 할 에너지와 시간을 소진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으로 이어지고,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에서도 또다시 반복될 이 풍경을 예감하며 무력감을 느낀다. 국민이 던진 한 표 한 표가 당권 경쟁의 명분으로 소비되는 현실 앞에서, 정치에 대한 기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치권의 시선이 온통 당대표 자리와 차기 공천권에 가 있는 사이, 국민의 삶을 짓누르는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를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진흙탕에서 승자가 가려진들 그 승리가 국민들의 먹고 사는 일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냉정한 감시와, 정책과 민생을 중심에 놓는 정치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꾸준한 목소리다. 민생에 귀 기울이는 정치,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그것이야말로 6월 3일 표심이 진짜로 요구한 것임을 정치권은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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