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4 chorus 실로 주께서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셨도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구리시민의 예술문화적 수요를 충실히 채워주는 구리시립합창단의 제 14회 정기공연이 헨델의 메시아 공연으로 2년 만에 개최되었다. MESSIAH는 오라토리오 형식의 성악곡으로 종교적인 제재를 극적으로 다루어 독창 · 합창 · 관현악에 의해 상연되며 무대 위의 연기가 포함되지 않는 점에서 오페라와 구분된다.
메시아란 본래는 히브리 어로 ‘기름 부은 자’를 의미하는 말인데, 보통 ‘구세주’라 번역되고 그리스도교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해당한다. 전곡은 3부로 이루어져 제1부에서는 그리스도 탄생의 예언과 성취, 제2부에서는 수난과 속죄, 제3부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영원한 생명을 다루고 있다.
성악곡인 메시아는 헨델의 수많은 오라토리오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이며, 오페라에서 실패하고 오라토리오로 전향해 성공을 거둔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런던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아오던 헨델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있는 필하모니 협회의 의뢰를 받아 완성한 것으로 그의 종교적인 정열을 남김없이 전한 역작이다.
일반적인 지자체 합창단에서 접하기 어려운 대작으로 국립합창단에서 대형 프로젝트로 진행하거나, 교회에서 일부 곡들이 독창이나 합창으로 소개되기는 하나 어제 공연에서 총 53개의 곡 중 단 7곡만을 제외하고 거의 전 곡을 부르며 공연이 매끄럽게 진행된 점은 김경희지휘자의 역량덕분이라 생각된다.
헨델의 메시아는 바흐의 오라토리오나 수난곡처럼 교회에서 상연하기 위해 작곡한, 이른바 교회 음악은 아니며, 더블린에서 초연된 것은 완성한 해인 1742년이고, 런던 초연은 그 이듬해인데, 참석한 조지 2세가「할렐루야 코러스」부분에서 몹시 감동하여 기립했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어 오늘날에도 그 대목에서는 전원이 기립하는 습관이 남아 있다.
어제 공연에서도 다수의 관람객들이 기립하여 감동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어 구리시민의 높은 예술적 수준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멘을 연호하는 일부 관람객이 있어 그 부분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헨델의 의도 자체가 교회음악이 아니었기에 기립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헨델에 대한 경의와 신앙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려하고 장엄한 음악을 들으며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는
모두의 비탄이 구세주를 통해 종결될 수 있기를 기원해보았다.
그렇기에 24번 합창곡, [실로 주께서 우리의 질고를 지셨도다]
는 마음 속 깊이 다가왔다.
편성은 독창(소프라노 · 알토 · 테너 · 베이스)과 혼성 4부 합창, 그리고 관현악(오늘날에는 2관 편성에 의한 경우가 많고, 그것에 통주 저음 악기가 참가한다)으로 이루어지는데, 협연한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오케스트라의 수준 높은 연주를 통해 장엄한 합창곡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시립합창단 이혜정반주자의 오르간 연주를 통해 풍부한 위엄을 더했고, 흔히 만날 수 없는 챔발로(하프시코드) 연주로 협연을 통한 다채롭고 고전적인 매력이 더했다. 다만 중간에 합창곡의 템포가 빨라지며 협연 연주와 약간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합창과 달리 정확한 박자를 지켜야 하는 오케스트라와의 조화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처음 독창자들과 합창단이 입장할 때 족히 2kg은 넘어 보이는 두툼한 악보책을 들고 입장하여 이채롭기는 했으나 공연이 진행되며 그 많은 곡들을 불러내려면 반드시 악보가 필요하리라 짐작은 되었다. 그러나 악보를 손에 들고 내려다보며 부르는 모습이 불편해보였고, 노래를 하며 소리를 끌어올릴 때나 감정을 표현하려 할 때 팔이 자유로워야 더 깊은 소리를 끌어올릴 수 있었을 텐데 보면대가 설치되었더라면 공연자 본래 역량을 다 발휘할 수 있었을 거라 본다. 공연자의 문제가 아닌 무대 전체를 빈틈없이 구성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공연은 듣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이 함께 하는 것인데
메시아 공연에 걸맞는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새로 선보여 시각적 즐거움을 더 줬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몇 년간 보아온 감청색 비즈드레스를 무대의상으로 다시 보게 되어 아쉬웠다. 2년 마다 무대의상 교체가 원칙으로 알고 있는데, 예산이 부족해 구비를 못한 것인지 예산이 배정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객석에 선출직 공무원들이 있었다면 의문을 해결해주셨을텐데, 1열과 2열의 텅빈 객석이 허전해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공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좋은 공연을 보여준 구리시립합창단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공연을 마치고,
본 공연의 주체인 구리시립합창단을 멋지게 관객에게 소개시키는 수순이 없었던 점은 의구심을 느끼게 했다.
협연한 오케스트라와 독창자들의 기여가 있었지만, 그들을 초대하여 멋진 공연을 보여준 구리시립합창단이 아트홀의 진정한 주인으로 부각되어 기립박수를 받는 순서가 있었더라면,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을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리시민의 예술과 함께 하는 삶에 깊은 향기를 더해주는 구리시립합창단의 공연에 감사드리며 연말 공연은 또 어떠할지 많은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