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친왕, 영친왕, 이구 황세손, 덕혜옹주 묘 같은 자락에 안치
– 영화관람 소감문 자료집으로 만들어 출연진에 보내
영화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이야기 덕혜옹주’ 가 8월3일 개봉된 이후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모신 홍릉 인근에 자리한 덕혜옹주의 묘 주변이 새로운 역사탐방의 현장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남양주시는 8 월 8일 영화를 감상한 공무원들이 그 소감문을 모아 작은 자료집으로 발간하여 영화사와 출연 배우, 시 문화단체, 그리고 시청 실과에 배포했다. 시 공무원들이 지난 3일 저녁 문화단체 임원과 함깨 남양주시 호평동 상업지구(이마트) 인근 영화관(메가박스 남양주)에서 이날 개봉된 영화 ‘덕혜옹주’를 단체 관람하고 소감문을 모아 작은 자료집으로 정리한 것이다.
자료집에 수록된 소감문에서 원종철(58세) 경제산업국장은 “국가나 개인이나 단체나 스스로 자생하고 생활 할 수 있는 힘 자생력을 길러야한다. 외부 힘의 논리에 끌려 다닌다면 우리가 하고자하는 목표를 이룰 수가 없다.”는 소감을 밝혔다.
함께 영화 관람을 함께한 남양주시 이용호(55세) 예총회장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세 번의 눈물을 흘렸다. 덕혜옹주가 징용노동자들 앞에서 일본어로 연설을 할 때 속으로 아니야 하다가 드디어 우리말로 본마음을 이야기 할 때 나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슬쩍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았다.”고 말했다.
영화를 관람한 젊은 공무원 이모씨는 “자료를 검색해 보니 덕혜옹주의 묘가 남양주 관내에 있고 홍유릉이 덕혜옹주의 부모님 고종황제를 모신 곳이고 명성황후, 순종황제(유릉)를 모신 곳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고종황제의 증손녀 이홍(李洪)여사도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이씨는 “상영 내내 눈물이 났다”고 말하고 “개봉 날 시 공무원들과 함께 덕혜옹주 영화를 보게 되어 더욱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이씨는 서울에 살다가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세모녀가 콧병에 걸렸고 어머니는 수술을 하였는데 담당 의사가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라는 권유를 받고 남양주 호평동 천마산 자락으로 이사를 해 남양주시와 인연을 맺었고 지난해 ‘남양주의 별난 명인’록에 올랐다. UN평화구호재단에서 10년간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주민자치센터에서 그림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 영화를 관람한 시청 간부 대부분은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남양주시에 고종황제, 순종황제, 덕혜옹주 등 조선시대 역사적 인물의 능과 묘가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알리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남양주시는 공무원들의 소감문과 덕혜옹주의 묘소 사진 등 관련 자료를 소책자로 인쇄하여 부서에 배부하고 덕혜옹주 영화제작자와 출연진에게 발송했다.
시에 따르면 남양주시에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홍유릉과 단종비 정순왕후의 묘인 사릉(思陵)이 자리하고 있다. 남양주-포천 경계지점에 자리한 광릉은 세조(수양대군)와 정희왕후의 릉이다. 이와 함께 광해군묘, 덕흥대원군묘, 흥선대원군묘가 남양주시 관내에 있다.
한편 덕혜옹주의 묘 현판의 설명문에는 덕혜옹주의 일생이 간명하게 기록되어있다.
[덕혜옹주의 묘]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의 고명딸인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의 묘이다. 고종은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덕수궁(경운궁)에 처음으로 유치원을 설립할 정도로 덕혜옹주를 아꼈다. 덕혜옹주는 9세가 될 때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에 덕혜옹주로 봉해졌고, 1925년에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으로 데려갔다. 일본에서는 영친왕 숙소에 기거하면서 학습원과 중등과정을 수료하였다. 19세에 소다케유키(宗武志,종무지)와 정략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1962년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다가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기사작성 신정미기자(slm488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