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헌식 고구려 지킴이 Articles 46
고구려·백제·신라는 다 같이 대륙과 한반도에 존재했던 우리의 조상이었습니다. 그 나라가 어디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고구려·백제·신라의 피와 그 역사와 문화를 물려받은 후손이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역사란 과거의 지나간 일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창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바로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현재 고구려역사보존회(www.greatcorea.kr) 사무국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천년 만에 밝혀진 안시성과 살수"가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천지가 있는 백산/태백산과 흑수의 교집합으로 정리한 신시 후보지는 아래 3군데로 집약된다. 1) 길림성 동만주 흑룡강(흑수)과 백두산 천지 2) 섬서성 감천현 발원 흑수와 미현의 태백산 천지 3) 산서성 수양현 발원 흑수와 말갈의 백산 천지 이 중에서 우리 민족의 시원지인 신시는 과연 어디일까? 가장 가능성... Read more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명연설은 문재인 대통령이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우리 민족은 오천 년을 함께 살고 칠십 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라고 말한 연설일 것이다. 또한 하이라이트는 문 대통... Read more
<삼국사기> 신라 헌덕왕 8년(816)에 “봄 정월 시중 헌창을 지방으로 내보내 청주(菁州)도독으로 삼았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 절동(浙東)까지 가서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이 170명이나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816년은 장보고가 당나라로 들어가기 4년 전이고, 청주도독이란 ‘청주’ 지방을 다스리는 지방... Read more
여러 경상도 출토 고구려 유물이 말해주듯이 경상도는 고구려 강역이었고, 경주는 신라의 천년고도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신라를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놓고 해석해야 여러 사서기록들이 성립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대표적인 경우가 나당연합군과 백제와의 전쟁과 해상왕 장보고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신라 위치가... Read more
요동정벌을 하겠다고 겁 없이 쳐들어왔다가 안시성에서 눈에 화살을 맞고 도망치다가 결국은 자승자박이 되어 200리 늪지대인 요택에 빠진 당 태종은 뒤에게 급하게 추격하던 연개소문에게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태백일사>에는 당 태종이 연개소문에게 항복을 구걸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춘추필법의 중국사서에는 그렇게 적혀있을... Read more
몽골에게 포로가 된 명나라 황제 시진핑은 위대한 대당성세(大唐盛世)의 실현을 위해 중국몽(中國夢)을 이루겠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단어는 역사적 사실도 아니며, 중국역사가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베이징 징화학교의 역사교사인 위안텅페이(袁騰飛)는 “일본도 역사교과서를 왜곡하지만 중국만큼은 아니다... Read more
자연하천까지 수나라 대운하로 과장한 중국 645년 5월 5일, 당태종이 흙다리를 놓아 건너갔던 요택은 고구려 침공을 위해 정주를 떠난 수문제의 30만 대군이 지나려고 했던 그 요택이며, 수양제가 영제거라는 운하를 만들어 지나갔던 늪지대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연이 있는 요택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현재 한·중 역사학계는 당시... Read more
중국 최대의 치욕 정강의 변 중국인의 가슴 속에는 지우고 싶고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치욕적인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 역사는 다름 아닌 바로 정강지변(靖康之變)이라는 사건인데, 정강이란 북송의 마지막 황제 흠종 치세에 쓰였던 연호이다. 우리가 40년간 지배했던 일본을 증오하듯이, 중국은 자기네에게 민족 최대의 치욕을 안... Read more
수양제와 당태종 당시 요수는 어디인가? 지난 연재에서는 시황제를 저격했다 실패한 창해역사 여홍성의 고향 창해군(滄海郡)의 위치가 산서성 동남부를 흐르는 청장수(清漳水) 부근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았고, 이번 연재에서는 그런 창해역사 여홍성이 남긴 족적을 통해 요수(遼水)가 어디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창해역... Read more
창해군을 강원도 강릉으로 비정한 일제식민사학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는 참으로 이상한 비석이 하나 서있다. 비석 앞면에는 ‘창해역사유허비(滄海力士遺墟碑)’라는 글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창해역사는 다름 아닌 장량과 함께 박랑사에서 진시황제를 저격했다가 실패한 여홍성이고, 그의 고향은 예국의 옛 도읍지였던 지금의 강릉시 대창리라는 사실... Read more












